2. 모든 것은 그 꿈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가나안의 요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라

by 아일라

모든 것은 ‘그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요셉이 당하게 될 모든 고난의 시작이 말이다.


형들이 먼 길을 온 자신을 구덩이에 빠뜨리고,

손이 묶여 이집트로 끌려가고,

난생 처음 보는 이방의 나라에서 노예 신분이 되었을 때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 기약 없는 옥살이를 했을 때도,

요셉은 그 날, 아직 행복했던 날 꾸었던 꿈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주 많은 날들, 긴긴 밤들을 보내면서 그 때를 떠올리고,

그 ‘빌어먹을 꿈’에 대해서, 그리고 그 꿈을 꾼 결과가 초래한 것에 대해서 수백 번 수천 번도 더 복기하며 후회하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그 날 나를 세겜에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 내가 그 꿈에 대해서 형들에게 경솔하게 입놀림을 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처음부터 내가 그런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때는 요셉이 가나안 땅에서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이다. 열일곱 살의 소년이었던 요셉은 아버지의 총애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 야곱에게는 요셉이 태어나기 전 첫째 부인인 레아가 낳아준 건장한 아들들이 여섯이나 되었고 막내딸도 하나 있었지만 먼저 태어난 그 자식들보다, 야곱 자신이 더 사랑하였던 둘째 부인인 라헬이 어렵게 낳은 첫아들인 요셉을 더 사랑했다. 그 증거로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다.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아들들인 사랑받은 여인의 자식이었던 배다른 동생을 미워하여 인사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편애에서 비롯된 어머니의 외로움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다. 원망을 쏟아부을 대상이 필요했다. 가만히 있어도 미울 그 녀석은 미운 짓만 골라서 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등에 업고 무서울 게 없어 보였던 그 맹랑한 아이는 이제 자신들이 양을 칠 때 와서 보고 있다가 사소한 잘못들을 아버지에게 그대로 가서 전하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가 자신을 아끼니 이런 일을 하면 자신을 더 사랑할 줄로 여기는 것이다. 요셉의 형들에게는 요셉이 눈엣가시였다. 보란 듯이 채색옷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자신들만큼 일도 하지 않는 주제에 우리를 감시하기까지 하다니.


아버지는 저런 녀석이 뭐가 잘나서 감싸고도는 것인지, 마냥 어린 아이도 아닌 열일곱 살의 요셉이 더욱 불편해지는 형들은 어느 날, 불난 집에 부채질할만한 말을 듣게 된다.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개역개정)

“Hear, I pray you, this dream which I have dreamed”(KJV)



요셉이 어떤 톤으로 이야기했는지는 상상에 맡겨야 할 문제다. 국문과 영문의 문장을 모두 살펴보고 나에게 드는 느낌은 정중함과 무례함 사이의 어딘가처럼 느껴진다. 개역개정에는 “들으시오” 처럼 다소 과격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청하건대”(I pray)는 말이 있는 것으로 “내가 꾼 꿈을 들어봐보세요”정도로 말한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들어주실래요?”라고 물어본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형들이 어린 동생이 무슨 꿈을 꾸었을지 결코 궁금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고, 요셉은 바로 자신의 꿈 이야기를 냅다 이어가기 때문이다.


그 꿈인즉슨 자신과 형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었는데, 자신의 단은 일어서 있고 형들의 곡식 단은 ‘자신의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발칙한 꿈인가. 요셉이 조금이라도 눈치가 있었다면 그 꿈을 꾸었어도 말하면 안 됐다. 정 말하고 싶었으면 종의 아들들에게나 말했어야 했다. 우리가 그 당시의 꿈 해몽이나 문화를 모르더라도 꿈의 해석이 즉시 될 정도로 너무나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꿈이 아닌가. 이는 요셉이 형들에게 도전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당연하게도 형들은 그 꿈을 듣고 분노했다. 안 그래도 아버지 믿고 으스대며 자신들을 고발하는 저 어린 녀석이 미워 죽겠는데 이제는 우리가 절까지 한다고? 그런데 이보다 더한 일이 일어난다. 요셉이 다른 꿈을 꾸고 또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것을 아버지에게까지 말했다. 열한 별은 요셉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의 수이고 해와 달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야곱은 요셉의 발칙함을 꾸짖었다. 형들의 분노야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 여기서 누가 제일 잘못한 걸까?

발칙하고 눈치없이 자신이 꿈을 두 번씩이나 떠벌린 요셉인가?

아내들에게도 그랬듯 자식들도 공평하게 사랑해주지 않고 편애하여 한쪽의 시기심과 다른 한쪽의 무례함을 부채질한 야곱인가?

미움과 시기심에 불타올라 자신의 이복 형제를 죽음에까지 이르도록 악한 일을 꾸민 야곱의 아들들인가?


아니면,

그 꿈을 꾸도록 한 하나님인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꾸도록 해 단지 개꿈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모든 것은 그 꿈 때문에 시작되었다.

요셉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셨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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