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요셉
1. 그저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힘든 싸움이 하나씩은 있지 않을까. 너무도 깊고 어려운 싸움. 직업이나 부(富)나 관계에 대해서 어떠한 성공을 이뤄낸다고 해서 쉽게 끝나지는 않는 것.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나 스스로도 확실하게 정리할 수는 없는 무언가.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가 겪고 있는 무언가를 실상 온전하게 전달할 수도 없다. 또 누군가와 속마음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약함을 내보이는 것이 쉽지 않아져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적당히 힘든 것',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어려움들만을 말하게 된다. 그런 것들은 겉껍질에 불과한 것들이다. 가장 밑바닥인 내핵에서 아물지 못해 쓰라린 무언가가 있고, 누군가에게 그것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나조차도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어떤 타인이 감히 그것을 다룰 수 있을까. 그래서 나의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의 힘겨운 싸움에 대해 듣는 것도 어려운 것 같다.
또한 살아가면서 사람은 이런 저런 소망을 갖게 되는데, 결국에는 내가 가장 힘든 싸움을 하는 그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를 가장 힘든 무언가를 해결해 줄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더없는 평안과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다. 배고픈 누군가가 음식으로 인해 행복하듯이. 집이 없어 어려운 사람은 집을 갖게 되면 행복할 것이고, 연인을 만나지 못해 외로운 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행복할 것이다. 어려운 직장 생활, 가난하고 불안정한 경제 생활, 외롭고 고립된 느낌.. 문제를 해소하거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바라고 기다린다.
그런 거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 문제를 두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때로는 시간을 두고 기다려야만 하는 문제들이 있고, 그런 것일수록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만 다루기에는 어려운 일들인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문제가, 그러한 기다림이 있다. 나의 경우 그 문제는 바로 외로움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고민하고 씨름하는 문제가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마음이 맞는 누군가를 만나려는 노력과 나 자신이 성숙해지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또 어느 정도는 노력해왔을 것이지만, 대부분은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인내하며 보내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결되는 외로움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저 앉아서, 생각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여러 것들을 하면서. 대부분은 흘러가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인내를 요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다림이 진짜 힘든 이유는 기다리는 것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을 때,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을 때이다. 누군가 살짝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아직 많이 남았어" 라든가, "거의 끝났어. 조금만 참아"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산에 오를 때 내려오는 누군가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희망고문이라도 듣고 싶은 적이 많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의 고통과 오해와 억울함 등 수난시대의 파티가 열릴 때 우리는 고구마를 백만 개 먹은 듯 얼마나 답답한가. 시청자의 댓글창에도 "이제 제발 사이다 좀 주세요"라는 등의 파티가 열린다. 다만 드라마에서는 작가가 어지간하지 않는 이상 사이다를 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 드라마는 때때로 예고편을 주기도 한다("여기서 끊으시면 어떡해요"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장면에서는 주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어쨌든 드라마는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 않다. 다음 예고편을 주는 일 따위는 없다. 그저 오늘이 있을 뿐이고, 그 이후를 아무도 알려줄 수 없다.
'기다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오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들이 상념에 머무르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이라면, 그 시간에 의미를 붙이고 싶다. 이제 더 이상은 버티는 것도, 자포자기 하는 것도 싫다. 옛날에는 쓸모가 없는 한낱 고물도 누군가에게는 쓰임이 있어 엿으로도 바꿔 먹었다. 더 이상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다. 정확한 해석도 의미도 알 수 없다고 해도 좋다. 꼬리라도 밟아 보자는 심정이었을 때, 내게 떠오른 누군가가 있었다.
2. 이해되지 않는 시간을 보냈던 자, 요셉
기다림 하면 아들을 주겠다던 하나님의 약속을 25년동안 기다린 아브라함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요셉을 떠올렸다. 이집트의 요셉. 요셉도 인고를 감내하고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성경에서는 그 인고의 시간에 요셉의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 기록한다. 요셉이 형들과 함께 양을 치던 때가 17세(창세기 37:2). 그리고 이집트에서 고난의 시간이 끝나고 파라오 다음가는 총리가 되었을 때가 30세(창 41:46). 정확히 몇 살에 이집트에 끌려갔는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형들과 양을 치기 시작하던 17세 이후이니 이집트에 있는 시간은 최대 13년. 최소 10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십대 후반과 찬란한 이십대를 모두 억울하고 괴로운 일에 휘말려 노예와 죄수로 살아간 것이다. 내 주변에는 한국 남성이라면 해야 하는 2년 정도의 의무복무를 하며 군대에서의 제약되고 폐쇄적인 생활이 갑갑하고 힘들었다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가족의 배신으로 집을 떠나 노예생활을 한 것으로 모자라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 감옥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내버린다면 그 삶을 무엇으로 묘사할 수 있을까?
물론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요셉은 서른 살에 자신을 노예로 고용했던 보디발보다 더 높은 신분, 그것도 이집트에서는 거의 신적 존재로 추앙받는 파라오 다음가는 위치로 올라 버린다. 이 놀라운 신분 상승의 스토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이후 이집트로 식량을 얻으러 오는 형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조아리는 장면은, 독자의 쾌감을 극대화시키려고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쾌하다. 지난날의 괴로움과 억울함이 한순가에 보상받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요셉을 생각할 때 하루아침에 노예와 죄수에서 총리가 된 놀라운 변모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놀라운 영광을 주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스토리로 읽히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요셉을 이해하기에, 또한 하나님을 이해하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스토리이다. 놀라운 상승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그 이해되지 않는 10여년의 시간이 존재했다. 10여년간 요셉이 가장 낮고 어려운 곳에서, 언제 끝날지 본인도 몰랐던 그 어두움과 절망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 시간을 총리 요셉을 위한 발판의 시간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그의 삶에 일어났으며 그 가운데 하나님도 요셉도 우리가 보기에는 침묵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에는 이집트에서의 요셉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그의 입장에서는 거의 드러나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거의 모두 외부에서 그에게 일어난 사건들 위주로 서술되어 있다. 그가 발화할 때는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 그리고 죄수로서 살아갈 때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해줄 때와 파라오 앞에 서서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줄 때이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행간 속에 감추인 요셉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읽고 싶어졌다. 내가 알고 싶은 건 그거였다. 그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으며, 어떻게 해석하였는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던 그 시간 속 요셉은 어떤 사람이 되어갔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셨던 건 무엇이었는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잃어야 했고 다음날 눈을 떠보니 악몽이 시작되고 있었다면.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빼어난 용모로 촉망받아 두려울 것 없었던 소년이 이방 나라의 종이 되고, 설마 여기에서 더 나빠지지는 않겠지 생각하며 주어진 일들을 열심히 해나가던 날 더러운 누명을 쓰고 죄수로 전락해버리는 인생이라면. 욥의 아내가 욥에게 말했듯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려라 하는 말이 귓전에 맴도는 그 시간에 그는 하나님께 어떤 마음으로 나아갔는지. 그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그가 이해할 수 없이 악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때에도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무엇보다 그에게 주어진 24시간. 하루하루의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그 시간은 지금의 시간에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아 낙심하는 나에게 다시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지 않을까.
그래서 이집트에서 약 13년간 노예와 죄수였던 청년 요셉을 세 가지 키워드로 그려보고자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그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작가가 쓰지 않은 행간을 독자가 스스로 채우며 상상하는 것. 이야기를 읽을 때 주인공에게 공감하고 이입하며 나라면 어떠했을까 상상하듯이 요셉의 시간을 그려나가 보고 싶다. 내가 주목하는 주요 키워드들은 '꿈'.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 이다. 요셉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던 그 시간을 시작하게 했던 '꿈', 그리고 그가 중간에 겪어야 했던 모든 '인내', 결국 그 시간이 끝에 다다르면서 하나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계획하셨는지 세 가지로 나누어서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