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당신을 향한 구원을 시작하시려면
아주 가끔 퇴근길 지하철 역사 안에서 또는 역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한 사람이 있다. 이 구역에 자주 나타나는 노숙인 남성이다. 그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두껍고 아주 더러워진 파카에, 찢어져서 다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누더기 같은 바지를 입고 있다. 거의 입었다기보다는 간신히 걸쳐져 있다. 머리는 가늠도 되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 단 한번도 손질하지 않았는지 엄청나게 길어서 마구 엉켜 있다. 얼굴은 까맣게 탔고 나이가 아주 지긋해 보일 정도로 주름살이 가득하고 생기 잃은 눈이 허공을 왔다갔다한다. 여러 비닐봉지가 담긴-거의 쓰레기에 가까워 보이는- 봉지를 양 손에 들고 가만히 주변을 배회한다. 아주 가끔 그의 몸에서 뿜어내는 냄새를 맡게 되는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악취였다.
그를 맨 처음에 봤을 때 든 생각은 '그는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다'였다. 그러나 도움을 준다는 것도 도움을 받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도움을 주려 하지만 그가 거절할 수도 있고, 자칫하면 한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의 행색은 도저히 도움을 주는 이의 염려이든 도움을 받는 이의 자존심이든 걱정할 단계가 아니었다. 몇 번은 안타깝게 지나쳤지만 시간이 갈수록 꼭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미 몇몇 사람들은 그를 돌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번은 그가 보이면 먹을 것을 사서 다시 찾아가보기도 했지만 그는 금방 어딘가로 자리를 떠 사라져버렸다. 언젠간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되어서 급한 마음에 샀던 사과 봉지라도 드리려 했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손으로 내가 내민 사과봉지를 밀어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다가가서, 바로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사서 건네드렸더니, 아주 귀찮다는 듯 팔으로 내가 내미는 봉지를 밀어냈다. 그리고 그의 파카에 뒤집어써져 있던 먼지와 더러운 것들이 내 옷과 손에 묻었다. 머쓱하기는 했지만, 완고하게 거절의 의사를 나타내었기에 더 이상 권할 수 없어 그를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고, 다시는 그에게 비슷한 도움을 주러 다가갈 수 없었다.
그 노숙인은 이미 지역에서도 꽤나 유명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이곳을 떠도는 분이었다. 누군가는 20년도 넘게 이곳과 다른 동네 일대를 전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늘 한결같이 "도움은 받지 않고, 어떤 시설에도 들어가려 하지 않고, 먹을 것을 주면 거의 받지 않으며, 머리를 깎거나 몸을 씻는 등의 행위도 거부"해오고 있다고 한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려 했고, 그가 더운 여름 또는 추운 겨울 객사할까 걱정되어 경찰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관련자를 불렀지만, 주변에서 악취가 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데다 본인이 도움을 받기를 거부해서 어떠한 공권력도 그의 상태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어떠한 사연이 있는지 모른다. 체감온도 40도가 넘는 폭염에도,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한파에도 찢어지고 헤진 겨울파카와 누더기를 걸치고, 어떠한 도움도 거절한 채 텅빈 눈으로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삶에 말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상태가 결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고, 가능하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 밖에서 지내야 하더라도 깨끗한 위생과 계절에 맞는 옷을 입어서 생명을 잘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요할 때는 음식도 공급해 주고 싶다. 나나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어떤 상태 정도는 유지하고 살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생명이 가장 소중할진대 그 생명만큼은 온전히 보존하고 살아갔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 어떠한 도움도 그에게 미칠 수 없다. 그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이기에, 자유민주주의국가인 우리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를 강제로 씻기고 머리를 자르고 옷을 갈아입혀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하지 않는다. 지금 이 상태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머리와 손톱은 비정상적으로 자라고 누더기를 걸치고 살기를 원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죄 가운데 살아가면서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 자신을 바꾸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 눈에는 우리가 이렇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우리의 그런 비참한 모습은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으리라. 우리는 얼마든지 죄 가운데 살면서 우리의 비참한 영혼을 들키지 않으려 더 멋지게 우리 자신을 치장할 수 있다. 그 중 많은 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거고, 인간적인 노력과 분투로 얻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모습들을 더 많이 가꾸고 다듬을수록, 내면은 점점 더 비어간다. 우리가 인간적인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우리의 죄를 사해 주지 못하고, 우리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땅에서의 삶뿐인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 땅에서의 삶 조차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무수한 것을 우리는 안다.
그 노숙인이 어떤 사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모든 도움을 거부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도움을 거부한다면 그는 계속 같은 모습으로 거기 서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죄에 빠져 아무런 소망 없이 사망으로 걸어감에도 그 길이 아니라고 잡아끄는 손길을 밀쳐내고, 나의 더러운 머리카락과 누더기 옷을 해결하도록 그 손에 나 자신을 맡기지 않는다면, 난 그대로 더러운 모습으로 죽어야만 한다. 온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게 없다. 누군가 나의 더러운 머리를 잘라 주고, 더러운 옷을 버리도록 도와 주고, 몸을 깨끗히 씻은 뒤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오직 "도움을 받을 마음" 그거 하나면 된다. 나는 그가 나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어도 그에게 다가갔다. 동네의 무수한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했다. 그리고 그가 그 때마다 그 내민 손들을 하나하나 붙잡았다면, 지금과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으리라. 매번 똑같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긍휼함으로 그를 먹이고 입힐 사람들은 늘 있었을 것이다. 선과 악 모두가 공존하는 인간에게도 그러한 선한 마음, 누군가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진대 그 사람을 지은 하나님은 어떠하실까? 그의 보이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을 자신의 영원함에 들어오도록 하시지 않을까?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도움을 받을 사람의 '기꺼이 받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오셨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예수님을 알고 믿었지만 누군가는 멸시하고 못박았다. 모든 구원과 영원한 사랑이 약속되어 있다는 말에도 그 말을 구원과 영원이라는 그 의미를 자신의 삶에서 깊이 숙고해보기도 전에 그 말을 종교적 상투어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사회와 시대의 분위기도 개인이 이런 선택을 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날이 되면 그것은 결코 사회의 잘못, 시대의 잘못이 되지 않을 것이다. 손을 내밀어 도움을 받고 자신을 온전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도록 자신을 맡기지 않은 이의 책임이 될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그 누군가를 사랑하셔서 그가 그 도움을 받아들이도록 강권하시기도 한다. 그렇지만, 도움을 받고 싶다, 변하고 싶다는 아주 작은 마음도 없이 자신의 길을 가려는 이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을 것 같다. 난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 또한 우리에게 주셨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임을 믿기 때문이다.
외적인 나의 모습은 머리도 헝클어지지 않게 빗고, 더럽지 않은 옷을 입고 살아가기에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주 평범한 사람과도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내가 여전히 씻어내야 할 얼룩과 뒤집어쓴 먼지와 어딘가에서 다쳐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상처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사실 예수님을 제외한 우리 모두는 어딘가가 조금씩 그런 상태가 아닌가? 우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하신 말씀처럼 그분과 같이 거룩해지기 위해 깨끗해져야 한다. 매일매일 나를 더럽히는 죄와 싸우지만, 그것은 우리가 온전히 이뤄낼 수 없다. 그분이 나를 씻도록 다시 한번 복음을 생각하고 도와 달라 손을 뻗을 때, 그가 나를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을 믿는다. 그는 우리가 죄인일 때 사랑하셨다. 더럽고 남루한 모습일 때 사랑하셨으니, 우리의 깨끗한 모습은 얼마나 더 기쁘게 보시고 사랑하실까! 우리 모두가, 합당한 때에, 도움을 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때로는 우리의 전부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실체 없는 그 자존심을 버리고 그분 앞에 겸손함으로 도움을 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아가 1:5)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