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이겠지요. 그런 날은 당장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나 큰 부담으로 느껴지고, 눈치 없이 자기 할일을 해야겠다는 듯 째깍대는 시계 초침 소리는 그 부담을 한층 더하는 듯합니다.
그런 날은 삶을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 이를테면 밥을 먹고 방 정리를 하고 빨래를 개는 일 등의 일마저도 힘겨운 일이 됩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해야 하는 일에 뛰어들어 보려 하지만 그럴 힘이 나지 않습니다. 방금까지 느낀 실패를 다시 맛볼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잠시 내려두고 짧은 도피를 할까 합니다. 잠을 자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고 나면 뭔가가 달라져 있을까 하는 기대는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짧은 유예시간을 주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 날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잘 알려진 답들은 거의 둘로 나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시 굳게 먹고 도전하든지, 아니면 내려놓고 푹 쉬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든지.제가 앞서 취하고자 했던 두 가지 행동입니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 두 가지 선택지 모두 ‘결국 다시 내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네, 결국 다시 해야 된단 말입니다. 나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추스르고 다시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못하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어떡해야 할까요?
지금 제게 주어진 일은 대학원생으로서 수강 신청한 과목들을 듣고, 그 과목의 공부를 하며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는 일입니다. 문학 전공의 석사과정 학생으로서 앞으로 학위논문을 쓸 것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책들을 읽고 누군가의 생각들을 정리하여 나 자신의 연구에 보태야 합니다. 어쨌든 결국 논문을 쓰는 일인데요. 이 일이 너무 따분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내 자신의 연구인데 유명한 학자들의 입을 빌려서 말해야 하고, 그런데 결국 내 말은 있어야 하고. 결국 다 그들의 생각에 기대서 한두 마디 하는 것 아닌가? 이들의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내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결국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파묻혀 이리저리 잘 읽어서 말 잘하는 방법만 배우다 끝나는 게 아닐까? 도대체 이들의 말도 어렵고 쓰는 것도 너무 어렵다. 근데, 이걸 쓰면 누가 읽기나 할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못하겠다’는 말이 나오더군요.
고작 소논문 하나 쓰는 것 때문입니다. 인생이 걸린 문제가 아니니에요. 그런데 인생에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건 도대체 이것조차도 못하겠다고 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당장의 생계나 누군가의 안위가 걸려 있는 문제의 의무도 아니고,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과제를 해야 하는 의무일 뿐인데, 그것조차도 나 자신이 선택한 것인데, 벌써부터 ‘못하겠다’는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둬 버릴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내 실력에, 내 인내심에 무슨 공부며 연구인지. 어쩌면 남들과 다르다는 허영심과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에 취직하지 않고 공부하겠다고 한 것이 아닐까. 공부도 여러 가지 인내를 요하는 일인데, 나는 어떤 것에 인내를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묵혀두었던 불안감들이 고개를 들고 꼬리 질문을 합니다. 내가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일들에 만족감을 느끼는 날들이 오게 될까. 부끄러운 자식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남은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제가 느끼는 불안감들은 모두 제가 현재를 근거 삼아 내다보는 미래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썩 좋은 해결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그런 판단들은 잠시 유보해야겠습니다. 조금은 마음을 가볍게 먹고 싶습니다. 이게 인류 대재앙과 관련된 문제도 아니니까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해보자는 마음과 그만두자는 마음에 모두 고개를 끄덕여 줍니다. 그래, 우선은 하자. 당장은 이것 말고 딱히 할 게 없으니까. 하다가 정 힘들면 그만두지 뭐. 그만두면? 대책은 없습니다. 우선 지금 힘들어하는 제가 살아야 되니까요. 지금 살지 못하면 미래의 저도 없을 텐데 그때의 성공이 다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으로요. 제가 두려워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네, 여전히 두렵습니다. 제일 큰 두려움은 창피를 당하거나 제 자신을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직 어떻게 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답을 찾고 있네요. 답을 못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글을 하나 쓰긴 했네요. 앞으로 잘할지 못할지가 이것에 달린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들은 공부가 아니라 사실 식사죠. 청소 아니면 샤워도 있고요. 다 싫다면 그냥 자려고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것이 아닌, 그냥 잠을 자고 싶습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서요. 문제들은 계속 남겠지만, 혹시 몰라요. 그냥 기분의 문제인지도. 내일 또 못하겠다고 생각이 든다면 오늘처럼 글을 쓰거나 다른 일을 찾아볼게요. 실패자의 삶. 제가 늘 성공만 하는 소설의 주인공보다 실패를 거듭하는 주인공을 더 좋아했던 까닭이 여기 있었던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