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보고 웃는 개들에게서 행복을 느낀다면

우리를 지은 신도 우리를 아름답다고 여길 것이다

by 아일라

지난 일요일, 주일예배가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번화가에서 살짝 떨어진 카페에 갔다. 콘크리트 건물에 1층은 레스토랑, 2층은 카페로 운영되는 곳이었는데, 건물의 옆에는 들꽃이 피어 있는 널찍한 잔디 마당이 있었다. 우리는 2층인 카페의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을 내다보니 마당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들이 있었다.


황금빛의 북슬북슬한 털이 몸을 감싸고 있는 웰시코기 두 마리. 조금 더운 듯 혀를 내밀고 있는 개들의 큰 귀는 쫑긋하게 세워져 있다. 크고 기민해 보이는 눈은 쉬지 않고 주변의 변화와 함께 움직인다. 빛을 받아서 더 그래 보였던 것 같지만 멀리서도 개들의 두툼한 몸을 감싸고 있는 털의 보드라움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귀여운 강아지들이라면 길거리에서도 심심찮게 보이고, 유튜브나 sns에서도 자신의 애완동물을 자랑하는 수많은 사진들과 동영상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왜인지 그날은 나도 친구도 그 금빛 생명체들(creatures)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왜일까?




그것은 분명 우리가 그 개들을 단지 귀엽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개들이 푸른 풀밭에 몸을 누이고 있거나, 사람들이 다가오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간다거나 하는 생명의 생동감과 함께 그들을 느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개들에게 친근감을 느꼈던 건, '표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개들은 웃고 있었다. 그런데, 개들도 표정이 있을까? 개가 눈물을 흘리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건 본 적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기분이 좋으면 우리가 웃는 것처럼 미소 짓거나 활짝 웃을까? 찾아보니 개들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인간이 웃는 것처럼 웃는 것은 아니란다. 개들이 편안한 상태, 행복한 상태일 때 입을 벌리고 이빨 위에 혀를 걸치게 되는데, 이때 웃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어떻든 좋은 상태일 때 그런 얼굴이 된다고 하니 그들이 행복해서 웃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도 하다.


또는 인간들끼리도 웃음이 전염되는 것처럼 우리가 개들을 보고 웃을 때 개들도 우리를 따라 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치 개들이 웃음으로 우리에게 화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을 보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면 그것은 행복한 기운을 전달할 것이다. 예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의 실험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물에게 긍정적인 말을 할 때는 물의 결정 모양이 아름답고 완전성이 있는 형태이지만 부정적인 말을 할 때는 깨져 있는 듯한 형태를 띠었다. 개와 사람은 물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결합상태이기에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기운의 영향을 더 다채롭게 받게 될 것이다.


중요한 건 개들이 우리가 ‘웃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웃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개들은 우리가 만든 존재도 아니고, 저들의 행복한 얼굴이라던지 하는 것도 순전히 인간인 우리의 감각적인 층위에서 불완전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행복해서 웃고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사실 인간인 우리가 가장 민감하고 가깝게 느끼는 것은 같은 인간일 것이고, 사랑을 경험한다는 것도 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 자신의 창조물은 아니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의 근원이나 존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신이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어떠한 마음이 들까?



우리는 생존을 위해, 혹은 누군가가 권력의 유지와 통제를 위해 이름 붙여놓은 수많은 가치들이 우리 자신의 가치를 수량화하고 물질화하는 시대에 산다. 그것들은 우리가 가진 무수한 모습들과 능력들을 시장가치로 판단한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는 가치가 있다 혹은 없다로 말해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가치라는 말에 내재된 것 그 이상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물을 보고 우리와 닮은 것만큼이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존재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것 그 이상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신이 우리를 창조했다면 그는 육체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넘어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에서까지 우리를 완전하고 조화롭게 인식할 것이다. 우리가 생명과 그에 관련한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생명과 아름다움을 창조한 신적 속성의 일부일 것이고, 신은 우리를 아름답다고 여길 것이다.


신이 우리의 생성에 관여했다면 그는 생명이 가진 아름다움과 사랑을 최초로 느꼈던 존재일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인간의 모습들을 종합적으로 보며, 우리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신이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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