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야구르트 스왈로우 시집>

by 아일라

일본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을 쓰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그는 자신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날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때는 1978년 4월, 그는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인 야쿠르트 스왈로우의 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진구 구장에 갔고, 당시 의자도 없던 잔디의 외야석에 드러누워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관전하고 있었습니다. 1회 말 야쿠르트 팀의 선두 타자가 깔끔한 2루타를 쳐 "딱!" 하는 상쾌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박수 소리가 띄엄띄엄 들릴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하루키는 문득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합니다.

Meiji_Jingu_Stadium-3.jpg 메이지 진구 구장(출처:위키피디아)


사실 하루키가 응원하는 야쿠르트 스왈로우 팀은 그다지 잘하는 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야구를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로 치면 한화 이글스 같은 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야쿠르트 스왈로우 시집>이라는 단편의 에세이에서 회상하기로 홈구장인 진구 구장에서 경기가 열려도 항상 원정팀의 응원석만 꽉 차고,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은, '안쓰러운 팀'이라고 말하는 걸 봐서는 말입니다. 하루키는 또한 야구장에 가면 흑맥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흑맥주 판매원은 썩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대개 라거 맥주를 찾는 바람에 사람들이 자신을 부르면 흑맥주를 파는 판매원들은 늘 우선 사과부터 합니다.

"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



경쾌한 안타 소리가 야구장에 울려 퍼진 것과 하루키가 그때 문득 '나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키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신인문학상을 타던 그 해 그가 응원하던 야쿠르트 스왈로우 팀이 구단 창설 '29년 만에'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거머쥐고 이어 리그 우승팀끼리 치르는 일본 선수권 시리즈에서도 우승을 하게 됩니다.


x9788970127194.jpeg 하루키의 등단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홈구장에서 경기를 해도 늘 상대팀의 응원단만 꽉 차 있던 야쿠르트 스왈로우 팀. 그리고 찾는 이가 거의 없어 파는 사람마저 '죄송합니다' 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던 흑맥주. 저도 그것들에 무언의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나 생각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내가 마침내 글을 쓴다 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이 부분은 받아들여지거나 사랑받기는 어려울지도 몰라"하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쿠르트 팀이 우승하기 전 하루키는 정말 많은 날의 '지는 경기'를 보아왔습니다. 또한 그가 소설을 쓰기 전의 삶 또한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을 찾기 이전의 '지는 나날들'이었습니다. 하루키는 야구를 보면서 인생의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에이, 오늘 또 졌네." 하고 바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야 했던 날들 같은 하루들을 보내야 한다면 이왕이면 '잘 지자'는 것입니다. 하루키도 '물론 지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훨씬 좋지만, 경기의 승패가 그 시간의 무게와 가치를 좌우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어떻게 여기느냐는 우리의 몫이니까요. 하루키가 말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경기장에서 보내는 시간이었던 것처럼, 소설가가 되려는 일보다 소설을 쓰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던 것처럼, 그가 사랑한 것은 야쿠르트 팀을 응원하며 흑맥주를 마시는 그 시간 자체였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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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아까부터 흑맥주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라고 미소 짓는 하루키처럼 흑맥주를 좋아하는 손님을 만날 것이고,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멋진 승리를 거두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런 날이 많으리라고 쉽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빛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을 낼 수 있는 영롱한 구슬을 손바닥에 받치고 경이롭게 바라보는 저를 보고 누군가는 "뭐야, 그냥 흔한 구슬이잖아." 하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 구슬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보이는 작고 흔한 것이겠지만, 그 '경이로움'이라는 것은 저에게 주어진 특별한 감각이니까요. 그 감각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구슬은 작고 흔할지 몰라도 그 구슬을 비추는 당신의 눈동자에 담긴 감각과 느낌들은 결코 흔하지 않습니다. 내일은 누군가가 가진 그런 작지만 엄청난 것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일인칭 단수>라는 책에 '야쿠르트 스왈로우 시집'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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