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너머의 것: <라스트 듀얼: 최후의 전투>

by 아일라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라스트 듀얼: 최후의 전투>는 혼돈과 전쟁, 부조리의 시대인 14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원작 소설과 사실에 기반한 영화입니다. 극에 1막, 2막이 있는 것처럼 영화는 총 3장(chapter)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 맷 데이먼이 분한 장 드 카루주와 아담 드라이버의 자크 르 그리, 그리고 조디 코머의 마르그리트 드 카루주의 시점으로 나누어져 똑같은 시간이 각각 전개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권선징악 영화? 선과 악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우리는 초반 두 챕터를 지나가면서 인물들의 다양한 행동과 말을 보면서 사건의 가닥을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마치 불같은 성격이지만 정의롭고 강직한 의인과 현명해 보이지만 진실을 왜곡하고 파렴치한 일을 벌이는 악인. 결국 선과 악의 싸움처럼 보입니다. 늘 그렇듯 '궁지에 몰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선'이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는 악'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려면 반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전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3장으로 가서는 그전까지 형성해왔던 선에 대한 이미지가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합니다. 그곳에는 선과 악의 구도는 더이상 온데간데없습니다. 진실에는 불의한 일을 당하고도 그 일을 정당하게 심판받는 일에 대한 모든 위험까지 자신이 오롯이 감당해야만 하는 여인이 있을 뿐입니다.


2. 여성들이 가진 진실


이 영화는 충분히 여성주의 관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3장에서는 남성들의 일들에 가려지고 묻힌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러납니다. 실제 재판이나 1,2장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마르그리트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진실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영화는 마지막 3장이 'the truth(진실)'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직접 보여줍니다. 따라서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진실은 그 모든 과정들, 그에 수반하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카루주도 등신이지만 그렇다고 르 그리를 응원할 수는 없는.. 그런 결투였죠.


앞서 드러난 드 카루주와 르 그리의 진실은 일어난 사건들을 자신의 감정과 생각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진실을 신봉하느라 진짜가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드 카루주와 르 그리의 진실은 모두 왜곡되어 있습니다. 전자는 자신의 행위, 르 그리를 고발하고 결투하는 행동은 자신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것이라는 정당화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질 경우 아내가 끔찍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진실은 외면합니다. 결국 자신의 앞길을 막아온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 자신의 소유물인 아내에게도 손을 뻗친 르 그리에 대한 분노 때문임은 교묘하게 감추면서요.

르 그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사랑은 자신에게는 물론 진실이겠죠. 자신의 행동이 비도덕적이고 뻔뻔한 범죄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그 일을 저지르고 난 후 죄책감에 시달리죠. 그러나 그가 고해성사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죄책감의 진실은 마르그리트에 대한 것이 아닌 드 카루주의 것을 침범한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사랑은 조금 다르게 그를 자극한 욕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창조하고 그것을 신봉해버리기에 이릅니다. 그것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진실이 되어도, 그는 변함없이 그것을 붙잡습니다. 나중에 보면, 진짜로 자신의 범죄가 범죄인지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 이르죠. 그렇지 않다면 칼끝이 목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무죄라고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마르그리트의 진실을 위한 싸움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카루주의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싸움의 피해자이며 고발자인 그녀는 카루주와 르 그리처럼 칼에 찔리지도, 얻어맞지도 않지만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대가들을 무겁게 집니다.


3. 진실 너머의 것


조디 코머는 마이매드펫다이어리에서 처음 봤는데 그때의 이미지가 거의 없네요.


그러나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진실 너머의 것을 얻습니다. 자신의 아이입니다. 모두가 미치도록 궁금해할 그 아이는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그런데 이 질문은 마르그리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지켜야 할 생명이 생기자 자신이 목숨을 걸고 밝혀내려 했던 진실은 뒷전이 됩니다. 결국 마르그리트는 두 남성의 왜곡된 진실의 희생양이 되어 결투대 앞에 서게 됩니다. 어쨌든 진실은 카루주의 칼과 그의 목숨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무력하게 이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카루주의 소유물이니까요.


카루주의 승리로 진실은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고 영웅이 됩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진실을 위해 자신을 던졌던, 그리고 진실 너머의 것을 얻기 위해 다시 자신을 결투장에,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화형대로 자신을 세워야만 했던 것은 마르그리트였던 것임을 보여줍니다. 승리를 얻은 카루주를 둘러싼 인파와 환호의 소리는 마르그리트의 지친 얼굴을 비추며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진실은 마르그리트의 아이와 그를 사랑스레 바라보는 마르그리트를 비춥니다. 결국 우리가 권선징악의 결말에서 간절히 원하게 되는 건 선과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뻔하다고 해도 말입니다. 감독은 왜곡된 진실들 너머 그녀가 간절히 지키고자 했던 것이 지켜질 수 있었던, 우리가 원하는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사실인)진실로 우리의 눈을 두게 합니다.


14세기의 여러 의복,장신구 등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또 벤 에플렉이 맡은 피에르도 볼만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화라고 하는 평을 보고 많이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서사가 세 번 반복되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전투 장면은 확실히 감독의 연출이 돋보였지만요. 기나긴 앞쪽 부분은 장르가 드라마에 가깝지 않나 하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여러 명배우들의 연기, 우리에게는 생소한 14세기 중세 시대 프랑스를 영화로나마 엿볼 수 있었다는 걸로 관람에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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