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쓴 두 편의 짧은 일기

Kodaline- High Hopes

by 아일라
전남대학교 용지호수

Kodaline- High Ho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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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번 계절은 유난히도 그렇다. 낮에는 살짝 덥기까지 한데 밤에는 공기가 제법 쌀쌀해서 가을인지 겨울인지 딱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오래 고민하기는 하지만, 이런 날씨가 싫지만은 않다. 하루 중 사계절의 날씨를 조금씩 맛보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영미소설 수업에서 써 내야 하는 한 편의 기말 페이퍼를 두고 무려 한 달을 생각만 하고 있다. 그 책에 대해서, 등장인물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도대체 써지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부담이 커서 그런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쓰는 글과 다르게 무겁고 딱딱하며 전문적이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쉽게 첫 글이 써지지가 않는다. 그도 그런데, 대개는 완벽주의 때문이다. 완벽히 준비되고 내 머릿속에서 글이 어떻게 흘러가야할지 정립되기 전까지는 조야한 문장 하나도 쓰기 꺼려한다. 이상하게, 삶의 다른 부분에서는 그야말로 대충 대충 의식도 하지 않고 사는데, 글을 쓸 때만은 그런 것 같다.


가끔 내가 사람과 사물들을 아주 예민하게 본다고 생각했다(여기서 예민하다는 감정적인 뜻이 아니다. 말 그대로 조금 더 자세히 본다고 해야 하나). 한때는 그런 모습이 조금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싫기도 했다. 그만큼의 생각을 하려면 얼마간은 신경이 그쪽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고, 가끔은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새 들어 하는 생각은, 사람은 각자 예민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분야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쪽에 예민하면, 다른 쪽에는 자연스럽게 둔감해진다. 나도 그랬다. 어느 쪽에서 놀랄 만큼 예민하고 신경이 발달되어 있다면, 다른 쪽에서도 역시 놀랄 만큼 둔감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많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일 지도 모른다. 만약 모든 분야에 예민하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쪽에서 지나치게 눈을 뜨고 있었다면 다른 쪽에서는 눈을 좀 감고 쉬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에 적당히 눈을 뜨고 균형 있게 골고루 신경쓰며 사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균형,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항상 실패하는 것이다.


2


나는 가끔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에 대한 질문을 들으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벙쪄 있곤 한다. 묻는 입장에서는 내 취향이나 조금 알아보자 하고 가볍게 건넨 것이지만 나는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영문과에 진학해서도 교수님이 어떤 작가와 책을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대답을 찾지 못해 곤란했고, 그런 나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다. 문학을 공부하는데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 몇 개 이름을 대질 못하다니?

좋아하는 작품이나 음악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음악에 빠져 몇 시간을 공상하기도 하고, 좋은 작품이 주는 울림에 며칠 간 취해있기도 한다. 그런 것들과 나의 인생이 중요하게 맞닿아 있는 것이 사실인데, 어째서 나는 중요한 몇 작품들의 ‘이름들’을 대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 작품들은 인생의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일까 하고 짐작해본다. 어떤 책이, 어떤 음악이 어떤 시간에서 너무 좋았고 그것이 내게 여러 가지 의미들을 준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마치 이 변화무쌍한 계절처럼, 하루에도 계속 변화하는 날씨처럼 유동적이면서, 늘 나를 에워싸기도 하며 아니면 저 먼 곳에서 떠다니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것들을 고정된 무언가로 잡아두기가 어렵다. 그리고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간의 관계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요즘은 코다라인(Kodaline)의 '높은 꿈들(High Hopes)'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그리고 오늘 다 읽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Never Let Me Go)’ 와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추억, 그리고 꿈… 오늘 그 음악을 듣는데 평소에 들었던 생각을 짧게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노래와 내 글이 어떤 관련이 있나 싶긴 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가사의 일부분을 인용해 둔다.


But I’ve got high hopes, it takes me back to when we started

High hopes, when you let it go, go out and start again

High hopes, oh, when it all comes to an end

But the world keeps spinning

(난 높은 꿈들이 있어, 그건 나를 시작했을 때로 되돌려 보내지.

높은 꿈들, 그걸 다 놓아버리면 나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높은 꿈들은 모든 게 다 끝날 때에도 [여전히 있지]

그래도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가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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