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삶을 위해서
한 해를 새로 시작하면서 다시 수많은 물음들과 두려움에 직면한다. 한 살이라는 나이는 이제 적지 않은 책임감과 함께 주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건 누구도 내게 그러한 책임감을 ‘실제로’ 부여한 적은 없다. 그것은 인류의 긴긴 역사 속에 새겨진 유전자와 같은 것이고, 이 시대의 경험들이며, 가깝게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표준과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인생에 새겨져있는 무엇은 말을 하지 않고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또한 책임감이 주는 무거움은 나 자신이 느끼는 것일 뿐이고,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삶을 살고 있는 동년배들이 있고, 사실은 누구도 나의 삶에 내가 관심을 두는 것만큼 관심이 있지 않다는 것도 느낀다. 그런 것들을 알면서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무엇은 결국 나는 그것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자신을 비롯한 많은 목소리들은 말한다. 별 수 없다고,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한다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거라고.. 특히나 누군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은 너무 싫다고, 그것만은 피해야 하지 않겠냐고.
만약 진실이라는 것이 내게 말을 걸어 오면, 그리고 누구도 그 진실을 기뻐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 살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말 할 것도 없이 ‘yes’ 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들은 누구나 양심이라는 것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원하지 않아도 no라고 대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대답을 살아내는 방식이다. 어떻게 삶에서 그 진실을 나타내느냐. 말없이 침묵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결국 진실에 ‘yes’ 라고 화답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는 이제부터 물어야 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내 손에 띠를 매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항상 누군가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가 원하는 글을 쓰고, 그들의 필요에 답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거기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을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내 인생에서 그거면 된다, 그거면 소박하지 않느냐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돈과 권력 명예를 쫓지 않았다고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나 자신을 위한 삶을, 누군가를 위한 삶이라고 포장했던 거다..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영광이었다.
그러니 잊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나 자신을 잊고 싶다. 그래야 무언가 가치있는 것이 발견될 거고, 진실을 찾을 것이다. 이 세상은 나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다.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이고, 그것에 맞춰 나의 삶의 모든 기준을 바꾸라 한다. 다른 사람의 말도, 가르침도.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한에서만 받아들이라 한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애초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자의식이 강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의 모든 것들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부터 진 싸움이었다. 나는 영원불변한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흔들리고 변화하는 존재다.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받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받아들이는 가치들 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누가 판단하는가? 바로 타인의 시선과 판단만으로도 흔들리는 내 자신이다. 그리고 나 자신은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잊을 때 가장 영적이고 행복하다. 그 행복은 나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삶이 주는 참 기쁨이다. 나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받아들여 왔고 세상이 강조하는 수많은 가치들로부터 나를 지워내고, 나의 삶이 단 하나 진실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 하나 진실만이 나를 추동하게끔 하는 것. 그 어떤 것도 나를 주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을 육신이, 이 세상에 발붙인 존재가 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영혼만은 진실에 귀를 열고 있고, 그것을 갈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의 짧고 연약한 인생에서 단 하나 일궈낼 만한 의미있는 것은 그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단지 안락함이나 누군가의 인정이나 부요함만을 추구하는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위해 죽기도 하고 옳다고 믿는 것에 자신을 던져 넣기도 하는 존재이다. 우리를 전율시키는 삶은 천문학적인 수의 재산을 가진 사람의 삶이 아니라, 그 재산보다도 고귀한 생명을 던져 버리는 삶이다. 생명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모든 가치들은 무너진다.
삶은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이다. 나 자신 또한 사랑할 만한 존재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이나 누군가의 기준으로 사랑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과 영혼을 창조하지 않았고 그것의 결정적인 신비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것처럼.. 그것의 모든 가치와 의미는 우리가 판단할 것이 아니다. 또한 세상이 판단할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것은 단 하나, 진실이 아닌 모든 것은 부정하는 것. 나머지 긍정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 나 자신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역설적으로는 나의 전인(全人)을 긍정하는 것임을 믿으면서다. 이 모든 것이 한 날의 치기와 젊음이 주는 백일몽이 아니기를. 비난받기 두려워 온갖 추상적인 말로 나 자신을 속이지 않기를. 한 쪽 눈은 감고 한 쪽 다리는 걸쳐놓은 채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지 않기를. 올해는 단 한 순간만이라도 진실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