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목소리들

짧은 소설

by 아일라


시인이 되어 시를 쓰고자 하는 어떤 소년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시를 쓰지 않고 있다. 삶을 너무나 쉽게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삶의 어려움에서 소년을 구원해 낸 수많은 손들은 소년에게 다가간다. 어떤 손은 그를 잡아당기고, 어루만지고, 밀어댄다. 소년은 그것들이 자신을 끌어내리려는지, 끌어올리려는지 알지 못한다. 끌어올리는 곳이 위인지, 끌어내리는 곳이 아래인지 하는 정확한 방향도 알 수 없기란 마찬가지였다.


손들은 곧 목소리가 된다.


봐, 지금 네가 있는 곳은 이런 세계야. 너도 결국 똑같은 사람 중에 한 명이야. 거기에 있든 여기에 있든 누가 알아주지 않는 것은 똑같아. 그러면 왜 굳이 그런 곳에 매달려 있어야 하지?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믿음이 가장 용기있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아? 그 믿음을 붙잡는 것? 아니야.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지. 의심 없이 믿어왔던 그것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뒤집을 수 있는 순간이지. 너의 믿음에 그런 태도를 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모두가, 너를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거야. 너는 지금까지 죽어도 평범해지는 것만은 피하려 했지. 네가 시인이 되고 싶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지. 내가 말하는데, 바로 그 용기가, 네가 믿어온 것으로부터 과감히 돌아서는 것이 평범하지 않은 거야. 알아, 알아. 이쪽에서의 삶이 평범하고 지루해 보이는 거. 또 금방 잊히겠지. 네가 두려워하는 거잖아. 하지만 그곳에서는 잊힐 것도 없이 사라질거야. 그곳에서도 너는 결국 우리 중 하나가 될거야. 이건 축복을 담아서 하는 말인데, 잘 들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 무엇인지 말할 수도 없는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는 것을, 본 적도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야. 그 일 자체는 가치 있는 일이지. 네가 그런 것을 시로 쓰려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야. 하지만 그건 진짜 삶이 아냐. 인간은 그런 부차적인 일로 삶의 전부를 희생할 수는 없어. 조금 더 가치 있고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에 너의 시간을 써야지. 시는 그 다음에 오는 거야.


소년은 목소리들을 듣는다. 그 목소리들 중에 어떤 것은 자신의 목소리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것이 자신의 것이고, 다른 사람들의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중 몇 가지의 말은 소년의 마음에 공명을 내며 퍼져갔다. 소년은 목소리를 따라가고 싶었다. 분명 시를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인생에 존재하는 것이다. 어쩌면 시를 쓰는 일이 삶을 사는 데 작위적인 일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건 목소리들이 말하는 '진짜 삶'이 아닐까? 그 삶을 살아낼 때 자신의 삶이 하나의 시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조악한 시 몇 줄이 적힌 종이뭉치와 잉크가 얼마 남지 않은 펜을 내던지는 것이 지금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용기이며 도피가 아닐까?


도피라니?


목소리들은 소년이 무심코 생각한 단어에 별 주의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소년은 알고 있다. 이 단어가 자신에게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어떤 저명한 심리학자는 진실은 무심코 던져진 말들이나 잘못 말한 말들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 무엇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가? 목소리들에 따르면 시는 '진짜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해온 것이 아닌가? 그 단어는 이제 목소리들의 울림보다도 더 큰 그늘이 되어 소년의 마음에 드리워진다. 진실은 그 그늘 속에 가리워져 있다. 아직 목소리들은 왁자지껄하게 소년을 끌어당긴다. 목소리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한다. 그리고 노래한다. 단단한 대지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축복!


소년은 여전히 목소리들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그 단어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으로 됐다! 오늘은 이 소용돌이 안에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소용돌이는 그 어떤 것보다 날카로운 펜촉이 되고 순결한 종이로 소년의 재료가 된다. 지금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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