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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19. 2022

한국에서 영국 웨일스로: 생각 많은 24시간

외롭고 험난한 출국의 여정과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 

대학원 한 학기를 휴학하고 영국에 간다.


휴학을 결정하고 영국에 가는 것은 인생에서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모든 과정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다. '이거 이래도 되나?'하는 생각을 할 틈 없이 휴학을 신청해야 했고, 집을 정리해야 했다.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아마 그런 고민을 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가는 쪽으로 결정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갈까 말까 할때는 무조건 간다. 후회는 가서 한다.'가 나의 신조인 것 같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후회할 거면 왜 후회하는지 아는 게 낫다. 가보지 않으면 무엇을 후회할지 알 수 없으니까. 물론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순간 떠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모든 방랑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 떠남으로써 바꾸고 싶은 것이 있는 거고, 무언가 도망치고 싶은 것이 있는 거다. 떠나기 전의 삶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타협하여 택했던 길에서 나는 오히려 원하는 것과는 더 멀어지게 되었고 그 안에서 미궁에 빠지고 있었다. 또 관계의 문제에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관계가 어긋나는 걸 경험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지금까지 고수했던 나의 믿음과 방식에 회의가 몰려왔다. 일도 사랑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 1년간 나는 내가 확실하다고 믿었던 길들에서 돌아서야 했다. 그럴 땐 불확실에 몸을 맡기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기에.




3월 14일 월요일. 출국날이다. 이륙시간은 화요일 0시 반쯤이라 월요일 저녁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전날 집을 정리하고 짐을 챙기느라 잠을 네 시간도 자지 못했지만 밤 비행기라 여유가 있었고, 하루 종일 고생해야 할 몸에 활력을 주기 위해 수영장으로 향했다. 같은 반에서 강습을 듣는 사람들은 다들 내가 떠나는 걸 알고 있기에 자연스레 언제 떠나는지 물어왔다. 나는 '오늘 밤'이라 대답했다. 말해놓고도 오늘 밤에 떠나는 것이 맞는가 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들 잘 다녀오라 격려해 주었다. 늘 마주치며 수영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우리는 항상 여기 있을테니 잘 다녀와요"라고 하셨다. 괜히 그 말이 따뜻하게 들렸다. 돌아올 곳을 생각하는 것이 떠나는 것을 완성시킨다.


큰 캐리어 하나와 여행용 배낭, 그리고 노트북과 아이패드 등이 담긴 에코백을 하나 맸다. 6개월간 살 짐을 최소한으로 챙긴다고 노력했는데도 캐리어는 상상을 초월하게 무거웠다. 배낭도 예외는 아니었고, 전자기기들이 든 에코백도 가볍지 않았다. 이 짐을 어떻게 다 들고 영국에, 도착해서도 웨일즈까지 가지..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지금 보니 책이 꽤나 무게를 차지했던 것 같다. 화장품이나 위생용품 등 소모해야 할 물건들도 꽤 있다. 이것들의 무게만큼이나 밀도 있는 날들을 보내야 할텐데. 사실 이것이 필요할지 저것이 필요할지 하는 걱정이 없다면 가방의 무게가 더 가벼워진다. 필요한 것들이 없다면 불편할 것이라는 걱정이 무거운 짐을 지게 한다. 나의 6개월 못되는 시간을 살아야 할 짐은 절대 혼자 옮길 수 없는 무게였다. 갈 때는 가족들이 짐을 들어주었고, 교통을 옮길 때도 늘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체크인을 도와주는 승무원은 수화물 기준을 몇 키로 정도 초과한 것을 너그럽게 눈감아주었다. 이렇듯 인생의 짐들도 결코 혼자 감당할 수 없다. 나의 몫으로 할당된 짐이지만 나 혼자 지고 감당해온 것이 아니다. 언제나 돕는 사람들이 있었다.잘 도착해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무거웠던 짐 만큼이나 큰 은혜와 감사함으로 바뀌었다.



작년 이후 다시 찾은 인천공항은 그때와 똑같이 한산했다. 아니, 그때보다는 조금 더 북적였던 것 같다. 출국하는 외국인이 절반 정도였다. 여행을 가는 듯 보이는 한국인들도 꽤 있었다. 일년 뒤면 더 활력을 찾을 것이다. 작년에 터키로 출국할 때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늘은 완벽하게 혼자라는 사실에 조금은 쓸쓸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독립적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것 같다. 혼자가 편하고 좋을 때가 있지만, 함께하면서 누리는 풍요로움은 혼자로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 같다.




꽤나 오랜 시간의 비행. 카타르항공을 이용해 밤 12시에 탑승. 10시간 30분 정도를 날아 카타르 도하로 가서 경유. 2시간 정도 대기하고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또 7시간 30분 타야 한다. 오랜 시간이라 힘들었지만 떠나기 일주일 간 준비로 하루 평균 4-5시간밖에 자지 못해 비행기에 앉는 순간 모든 피로감을 느끼며 잠들었다. 옆자리에 사람도 타지 않아 누워서 잘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그렇게 거의 8시간을 일어나지 않았다. 중간에 기내식이 왔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잘 수 있어서 비행시간이 빠르게 지나감에 감사했다.


삐까뻔쩍한 카타르 도하 공항.


두 번째 비행기는 사람이 꽉 차서 출발했다. 내 옆자리에는 두 명의 영국 남자들이었다. 평소 같으면 말도 붙여보고 했겠지만 왠지 둘다 무심해 보였고 옆자리 분은 조금 특이해 보여서 조용해야겠다 싶었다. 서로 조금만 움직여도 눈치를 본다. 지금 생각하니까 왠지 웃기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 배려한다고 그랬을 건데. 잠이 안 와서 책도 봤다가 영화도 틀었다가 일기도 썼다가 했다. 옆자리 남성분은 내가 뭘 하는지 관심이 많은가 싶을 정도로 날 쳐다봤는데 사실 그냥 무료한데 이 외국인이 뭘하나 싶어서 봤던 것 같다. 나중에는 영어소설을 조금 봤다가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 밑줄을 쳤는데 그분이 내가 밑줄친 것을 같이 읽고 있었다. 같이 보고 독서토론이나 해 볼걸. 그러다 그 아저씨가 특이한 팔찌를 차고 있어서 뭔지 물었더니 케냐 국기라고 했다. 자신은 영국과 케냐 두 나라에 모두 집이 있고, 케냐에서는 가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그렇게 런던에 도착해서 짐을 찾는 곳으로 향하는데 길이 조금 헷갈려서 헤매고 있었다. 그 때 옆옆자리에 앉았던 남자가 이 길인 것 같다며 도와주었다. 자기도 잘 모르겠는데 맞는것 같다면서. 억양을 들어보니 영국사람인데 몰라?! 싶은 내 얼굴을 읽었는지 자기도 영국에 3년만에 돌아오는 거라고 말했다. 일본에 살다가 귀국했다고 한다. 분명히 가서 영어 선생님 했을 거고, 나이는 내 또래거나 조금 더 어릴거라고 짐작했는데 역시 틀리지 않았다. 출입국심사 통과하는 시간동안 조금의 대화를 나눴다. 여기서 뭐하냐고 물어서 공부한다고 했는데 당연히 영어공부한다고 생각했는지 “영어는 어디서 배워?”하고 물었다가 혼자 흠칫하더니 “미안, 내가 일본에서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서 너에게도 순간 그렇게 물어봤어”라고 말한다. 당연히 영국에서 영어공부한다고 생각했던게 조금 무례하게 보일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너가 틀리지 않아. 내 전공은 영어거든”하고 쿨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현지 사람과 오랜만에 대화를 나누어서 즐거웠다. 3년 만에 귀국한 거면 분명 오자마자 하고 싶었던 게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보니 내가 말을 이상하게 했는지 나의 맥락을 몰랐는지 “가르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너가 하는 일 말고.. 친구들 만나서 마라탕 먹기, 떡볶이 먹기 이런 거 물어본건디.. 열심히 설명했더니 아 하고는 없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구 만나겠지.” 와, 들어본 것 중에서 제일 참신한 대답이다!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영국 와서 첫 번째 친구를 사귀는 건가! 하고 기대했는데 출입국심사에서 엇갈려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서 스완시(Swansea)로 가는 고속버스를 기다렸다가 탑승했다. 드디어 영국에 왔다는 생각에 왠지 조금은 설레서 피로는 잊고 열심히 창 밖을 구경했다. 얼른 시내를 좀 보고 싶은데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출발지연이 되었고, 당연히 고속버스니 시내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 계속 고속도로만 달렸다. 그래서 나무와 초록 들판과 풀을 뜯고있는 양과 말 구경만 실컷 했다. 그러고 있으니 피로가 몰려와 도착할 때쯤엔 정신을 잃고 졸고 있었다. 이미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었고, 기내식 이후로 아무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힘든 24시간+a의 여정이 끝나고 드디어 스완시에 내렸고, 내가 살 클라네클리(Llanelli)로 데려가 주실 분들이 감사하게도 마중을 나와주셨다. 주변은 온통 까맣고 보이지 않았다. 몸이 지쳐서 그랬는지 앞으로의 날들이 괜히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속단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아닌가. 나를 인도하시는 분은 언제나 나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시니. 기쁘게 길을 가는 것이 마땅하다. 숙소에 도착했더니 맛있는 저녁식사가 준비되어 있었고, 창가 쪽 내가 좋아하는 자리의 아늑한 침대도 주어졌다. 그렇게 나는 영국 웨일스에 무사히 도착했다. 시작이 반이니까 절반은 한 셈이다.



흐려도 예쁜 작은 동네


첫 브이로그 유튜브:


https://youtu.be/CEBPTbY2zN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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