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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26. 2022

식사를 직접 만들어 먹어야 하는 철학적 이유

[영국에서 하루에 한 편 에세이] 01


영국에서는 외식 비용이 싸지 않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좋은 식재료들을 구할 수 있기에 요리해서 먹는 편이 훨씬 좋다고 한다. 나는 외국인으로 영국에서 약 6개월을 살아남아야 하기에 한국에서처럼 한 끼 이상을 외식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하루 세 끼를 사실상 다 만들어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요리할 엄두를 내지 않았다. 나는 늘 시간이 부족했다. 하고 싶은 것과 이루어 내고 싶은 것은 무한한 반면 하루 중 온전히 나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무언가를 한두 가지 하고, 먹고 이동하고 하다 보면 금방 어둑한 저녁이 찾아왔으니, 요리하는 시간은 사치에 가까웠다. 혼자 살았기 때문에 먹기 위해서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해야 한다. 


영국의 아침식사. 빵과 과일과 시리얼. 많은 스프레드.


일단 요리를 위해서는 식재료도 사야 하고, 그것을 잘 관리해야 하고, 조리를 위해 손질도 해서 볶고 굽고 삶는 등의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요리하면서 벌어진 모든 난리들을 수습하고 사용한 식기구들을 설거지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모든 시간과 노동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사 먹고 시간을 아끼겠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활이었다. 모든 자취생들은 나의 말을 공감할 것이다. 여유가 있고 살림머리가 있고 반찬을 가져다주는 어머니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것도 없었다. 혼자 사는 우리에게는 대충 개수대에 담가 놓으면 설거지를 해 주는 엄마가 없다. 함께 요리하면서 일손을 도와줄 남편도, 아내도, 룸메이트도, 하다못해 손을 빌릴 고양이도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이 오로지 본인의 몫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사 먹는 것이 일상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사 먹다 보면 사 먹을 수 있는 메뉴 중 어떤 것도 그닥 먹고 싶지 않은 때가 온다. 소위 말하는 '물린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사 먹는 것은 늘 물린다. 똑같은 메뉴를 여러 번 먹는 건 쉽지 않다. 그럴 땐 확실히 소박하지만 집에서 직접 차려 먹는 음식이 훨씬 맛있고 달게 느껴진다. 우리가 매일 바깥 음식을 먹다가 본가에 가서 먹는 밥이 그렇게 따뜻하고 맛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직접 자신이 먹을 것, 가족이 먹을 것을 만들어서 먹는 것은 그냥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간을 쓰고 노동과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건 시간이 넘쳐나는 때문이 아니다. 영국에서 일주일 간 매일을 꼬박 무언가를 만드는 손길을 보았고, 매 끼니마다 밥상을 직접 차려 먹고 치우면서 나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포만감을 느꼈다. 만들고 먹었던 모든 음식이 각각의 맛을 내었고 그 어떤 것도 질리지 않았다.  


무리 중 한 명이라도 요리를 잘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들이 구원받는다. 라자냐와 사과샐러드.


이미 완성된 요리로 조리된 음식을 먹는 것은 그 나름대로 감사한 일이다.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하루에 한 끼 이상은 외식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그러나 완성된 요리는 그 자체의 맛들과 포만감과 에너지를 우리에게 선사해줄 수 있지만 그 요리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들까지 느끼도록 할 수는 없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직접 만드는 과정들은 우리 자신에게도 먹는 것, 섭취하는 것 이상의 더 깊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식재료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여러 모양으로 바꾸고 가열하고 섞고 하는 그 모든 과정들도 '먹는 것'의 일부가 된다. 또 먹은 그릇을 치우고 씻고 다음에 담고 사용할 시간을 위해 깨끗한 채로 보관하는 것. 그 과정도 역시 '먹는 것'의 일부이다.


나는 늘 높은 차원의 삶을 생각하면 먹는 일은 한없이 별것 아니고 사사로운 일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요리하고 먹고 치우는 시간이 아깝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잘 먹는 것이 정신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할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은 한없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대부분은 바쁘고 여유 없이 보내거나 번거로움과 귀찮음, 권태가 우리를 지배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것들 때문에 우리가 직접 무언가를 감각하면서 모든 생명력과 생동함을 느낄 기회를 다른 누군가가 앗아가게 두진 말자. 열심히 만들고 먹으면서, 우리는 삶이 주는 모든 수고로움과 고됨과 더불어 그것이 가져다주는 영양분과 생명력을 누릴 것이다.




[영국에서 하루에 한 편 에세이] : 2022년 3월 중순부터 약 6개월간 영국 웨일스에 체류하는 필자가 아무 주제로나 하루에 한 편 에세이를 씁니다. 글이 지속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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