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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r 29. 2022

이해할 수 없지만 인도하심이 있는 곳으로

[영국에서 하루에 한 편 에세이] 03

나는 지금 영국에 잠시 살고 있다. 다들 영국이라고 하면 런던이나 맨체스터 에든버러 같은 곳을 떠올리고 '와, 부럽다'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왠지 그런 반응이 썩 달갑지 않아서 일부러 영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웨일즈에 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다들 '웨일즈가 어디지?'하고 묻는다. 웨일즈는 상대적으로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보다 덜 알려져 있어 유럽의 역사나 지명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 이상은 생소한 곳이다. 처음 웨일즈에 있는 클라네클리라는 작은 도시에 가겠다고 했을 때 아빠의 반응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가 들은 것 중 제일 솔직한 반응이었다고 생각한다.


"거기 가서 뭐하게? 우리나라로 치면 구례 같은 곳 아닌가?"


나조차도 처음 이곳에 갈까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국인데, 기왕 살 거 런던에서 살아보는 게 훨씬 멋있지 않을까? 내가 공부했던 많은 작가들도 런던에 살았고, 4년 전 잠시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런던은 즐겁고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였다. 런던이 살기에 부담스러우면 얼마든지 다른 도시들이 있다. 리버풀, 맨체스터, 옥스퍼드 등등. 특히 영국은 유구한 역사들과 문화유산, 자연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그 모든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고 접근하기 쉬운 곳들을 놔두고 과연 인구가 5만이 안 되는 작은 도시에 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일까? 클라네클리는 웨일즈에서 제일 큰 도시인 인구 45만의 도시인 카디프와도 기차로 한 시간 반, 버스로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공부, 여행, 사교, 선교활동을 한다고 해도 이곳보다 더 나은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더 좋은 길을 선택하고 싶다. 나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돈을 더 모으고 실력을 더 쌓아서 유학을 간다면 이해하겠는데 이렇게 무작정 어딘지도 잘 모르는 곳으로 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조금 더 인생의 계획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말씀도 전혀 틀린 게 아니었다. 나로서도 그쪽이 더 납득이 된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 이후로부터는 나는 나의 삶의 모든 여정을 하나님께 의탁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번의 결정도 자의적인 것으로 할 수 없기에 나는 나의 길을 놓고 기도드렸다. 가고 싶은 마음 반, 가고 싶지 않은 마음 반으로 기도했을 때 이곳으로 오는 것이 기대가 되고 기쁨이 있었기에 이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지고 있던 걱정이나 그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부어지는 기대와 기쁨은 여전히 내가 다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혼이 기뻐하는 길이라면 그 길로 향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길이 모두가 좋다고 여기는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에 더 가깝다면 당연히 그분은 그 길로 인도하시리라.


내가 다 이해하고 가는 길이 아니기에 나는 나 자신의 어떤 기대나 생각 등을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능력이나 노력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이곳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함께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협력하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결국 왜 내가 이곳을 와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렇다. 남들이 생각할 때는 물론이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불확실과 모호함 가운데 살아가는 것 같다. 유익을 가져다줄 선택지를 놔두고 전혀 유익이 없어 보이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사람과 사람의 길을 꿰뚫어 보고 완전한 선함 가운데 인도하시는 분의 길이라면.. 그 길은 최상의 길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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