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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Apr 05. 2022

모든 것을 줄 사랑과 삶을 찾을 때까지 여행은 계속된다

영국에서 하루 한 편 에세이 04


웨일즈 클라네클리에 온지 벌써 3주가 다 되어간다. 나는 금새 이 작은 마을의 일부가 되어 지경을 조금씩 넓혀가는(?) 중인 것 같다. 매일 아침 수영장에도 가고, 헬스장에도 가고, 오후에는 도서관 레퍼런스 룸에서 졸기도 하고, 어둑해지기 바로 직전에 동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홀로 올라가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갈길이 멀다. 아직 안 가본 곳이 많고, 아직도 영국 동전들에 익숙하지 않아서 지갑에 사용을 망설이는 짤짤이들이 늘어나는 중이고, 영어를 할 때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래도 난, 먹고 살 만큼은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이방인인 상태가 썩 좋다. 어느 정도는 나의 것처럼 익숙하지만, 완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어 늘 한쪽으로는 긴장이 있는 그런 상태 말이다.


타국에서 지낸다는 건, 현지인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끼어 지내며 때로는 나도 이 곳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나에게서 태어나 나고 자란 나의 나라, 나의 고향의 냄새를 가장 강하게 맡는 일이다. 

나는 한국이 아닌 영국에서 가장 한국인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간혹 내 나라 한국에 있을 때에도 내가 다녔고 경험했던 나라들의 냄새와 그리움을 동반한 느낌이 가끔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는, 단순히 외국에서 그 냄새를 맡는 것 이상이다. 나 자신이 ‘그 나라’가 된다. 나 자신이 나의 나라의 일부가 되어 이곳에서 경험된다. 그렇게 경험된 내 나라는 익숙함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마치 거울 속 자신이 거울 바깥으로 나온 모습을 보는 것처럼. 거울 속에서 내가 나온다면 그 모습은 익숙하기보다는 오히려 낯설 것이다. 그런 모습처럼, 타국에서 사는 것은 몸에 배어 있으나 또 다른 낯섦으로 다가오는 나의 나라와 나 자신을 경험하는 일이다.


클라네클리. 조금만 오르막으로 가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문학소녀라는 별명을 가졌었던 나에게 영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꿈 같은 곳이다. 기차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과 거친 나무줄기들과 언제 지어졌는지 모를, 동화에서나 보던 낡은 벽돌집들이 보이면 나는 책 속 한 풍경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러나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그런 생활까지 꿈 같은 것은 아니다. 아니, 책 속 풍경들이 현대가 아닌 이전 시대라면 오히려 그것까지 재현되었다고 보아야 하나. 전통과 역사를 반영하는 건물들이 많고 그것을 보존하는 만큼 건물들은 낡았고 노후화된 시설이 많다. 영국이 건물 보수(repair)에 보수적(conservative)이라고 해서 그렇단다. 우리 나라는 어딜 가든 냉난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곳이 많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잘되어 있는 곳도 많겠지만 대부분의 시설은 오래되었다. 나는 아직도 물이 금방 끊기는 수도꼭지들과 천차만별인 물 온도에 적응하는 중이다. 잘 내려가지 않는 변기 물은 말할 것도 없고.


느린 인터넷은 또 어떤가. 이 도시엔 인터넷 망이 많이 설치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지만 가끔은 데이터가 끊기는 것도 모자라 전파 자체가 잡히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오히려 지하철에서(!!) 쾌적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곳은 지상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아예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런던 튜브.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대도시가 아닌 곳에 살고 있어서 겪는 불편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소도시와 비교해보더라도 이곳의 시설이나 서비스의 수준이 낮다는 것은 사실일 것 같다. 차 수리나 집 수리 등 여러 가지의 서비스 비용은 그것의 품질이나 제공되는 서비스의 퀄리티 대비 한국보다 훨씬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비싸다.


내가 이런 비교를 한 이유는 이곳에서의 불편함을 호소하거나 까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비교가 한편으로 내가 어떤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영국의 문학과 자연 풍경, 그리고 느리게 가는 사람들, 영국 발음 등등 많은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역시 한국인으로서 그곳에 오랜시간 동안 내가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사랑했던 것들, 편하게 누렸으면서도 누리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이는 풍경의 달라짐 때문이라도, 나는 떠남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만 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결국 인간이 어떤 곳에서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은 어떤 곳이 더 편하고 살기 좋냐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인생의 시간을 내어주며 사랑하고 싶은 곳을 찾는 일이 아닐까? 인간이 완벽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이 지상에 없다. 20대 초반의 나는 그런 곳을 찾으면 나의 인생에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줄로 믿고 여러 곳을 가보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지만, 어떤 곳에 사느냐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님을 느낀다.


인간이 어떤 것을 결정적으로 사랑한다고 한다는 의미는, 그것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다. 바로 사랑하는 그것에 자기 자신을 내어주면서부터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내어줌이 역설적으로 가장 자기 자신다운 일, 자기긍정이 된다. 그들은 모든 의미 있는 것에는 그만큼의 고통이나 위험도 감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좋은 것이 편한 것이 아닌 것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문제는 먼저 그렇게 마음과 몸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일 거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헤어짐, 상처, 죽음의 위험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감수하고 사랑을 만나고 싶은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어둠에 내어 주지 않고 높은 곳에 품은 마음을 간직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생명을 내어줄 사랑을, 삶을 만날 것이다. 그러한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여기 작은 도시 클라네클리에서 앉아서 소망해본다.


순수하게 놀던 클라네클리의 어린이들. 흙을 뭍히고 물에 들어가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인생을 걸고 사랑할 만한 것을 찾았는가 있다면 무엇인지, 아직 답할 수 없다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묻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의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가장 깊은 의미까지' 긍정하는 것이기를 바란다.


최근에 올린 브이로그도 관심 있으면 보러 오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3VjZ6J1x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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