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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Apr 09. 2022

갈까 말까 할 때는 갈 수밖에. 런던으로

영국에서 하루에 한 편 에세이 05


영국은 부활절 방학이 시작되었다. 정확히는 다음주 월요일인 4월 11일부터지만, 9일부터 주말이니 사실상 방학은 금요일 저녁인 오늘 8일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 덕분에 클라네클리의 작은 동네에 살고 있는 나도 방학 계획을 세웠다. 런던에 가기로 한 것이다. 영국에 오기 전에는 영국 내에서 기필코 여러 곳을 여행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영국에서 살게 된 인생의 몇 안되는 기회일지 모르니, 반드시 그 이 나라의 모든 것, 특히 나는 문학을 전공하니 이 나라에서 나온 풍부한 문학의 영감들을 다 누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오게 되니 한 곳에 자리를 잘 잡고 살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아서 여행 생각은 거의 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고 있기에 가끔은 홀로 시간을 누리고 싶어서 잠깐 떠나(away)있고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내 나라도 아닌 외국에서 나그네로 발붙이고 살아가는 시점에 또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꾸미고 짐을 챙기고 미지의 가능성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확실히 나도 나이를 먹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겁도 없이 해외에서 혼자 여행하느냐고 신기한 듯 묻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여행하고 싶고 같이 갈 사람이 없으면 혼자 가는 거지. 뭐가 대단하고 신기할까. 그 땐 ‘여행 잘 하는 유전자’라는 것이 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유전자가 있다기보다는 그 때는 내가 그것들을 감당할 체력이 있었고, 여행이 주는 설렘 때문에 그것들을 하기 위한 노력, 돈과 시간, 위험 감수 등을 그닥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20대의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은? 혼자 하는 여행이 설레지 않고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많은 곳을 가고 싶지만 또 굳이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한다. 와, 나 정말 여행에 설레고 울고 웃던 그 사람이 아니구나. 나는 절대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할 거라 여겼는데, 그것도 아니구나. 나이가 먹어가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확고하게 가졌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무너진다. 30대, 40대를 넘어가면 나는 지금의 ‘나’가 아니겠지.


어쩔 수 없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앞으로 나이를 먹고 지금보다  변하겠지만   변하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무언가들도 발견한다.  증거가 바로 지금이다. 결국  런던에 왔다. 여행할  있는 시간과 기회를 절대 놓치려 하지 않는 . 솔직히 아직도 귀찮고 계획도 하나 없지만  ‘그냥 것이다. 이게 나인  같다. 갈까 말까  때는 그냥 가고 본다. 숙소도 가기 전날  겨우 예약하고 어딜 갈지 무엇을 할지 하나도 정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것을 알기 때문이다. 런던에 갈까? 하고 고민할  나는 한국에서 웨일즈에 갈까?하고 고민하던 나를 떠올렸다. 고민하고 예스를 해서  결과가 바로 지금 아닌가. 오지 않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것들을 알았고 보았고 경험했다. 이곳에   3주정도 되었는데 나는 이미 한국을 떠날 때의 내가 아니다.


이곳에 와서 무언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을 보고 발견했다는 뜻이 아니다. 갔다는  자체가 나를 바꿔 놓는 일이었음을 말한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하는 모든 과정에서 나는 익숙함을 벗어버려야 했고 새로운 시간표와 관계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곳에서 살면서  나는 다른 익숙함을  입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전에 입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다는 것은 몸뚱이로서는 새로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새로움을  입으러 왔다. 이제는 설렘보다 걱정이   20 후반이 되어버렸지만.. 차라리 와서 후회해야겠다 은 마음으로 왔다. 도착했더니 웬걸, 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있다. 숙소에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숙소는 3일 정도 예약을 했지만 홀리데이까지는 1주일 정도의 시간이 있다. 구체적은 계획은 없다. 당장 내일부터 뭘 할지도 잘 모르겠다. 기도하면서 다닐 수밖엔 없다.


그래도 대충 여행의 제목은 정했다.

[현지인처럼 산책하고 박물관에 가서 공부하고 떠오르는 것 아무거나 그때그때 쓰면서 지내기: 런던 편]이다.


그럼 하루에 하나의 에세이 겸 일기로 다시 찾아오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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