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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y 17. 2022

#1 우크라이나를 만나러 폴란드에 오다

폴란드에서의 10일

폴란드에서의 10일간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등장인물:

왼쪽부터 나(그레이스), 레베카, 줄리, 쉐프 토마스, 루시앙, 이바, 리더 석, 제임스. 루톤 공항에서 출발 직전



동유럽은 처음인데 동화 속 나라 같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70일 정도가 지난 2022년 5월 5일, 현지시각으로 5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나와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폴란드 크라코우(Krakow) 공항에 이륙했다. 비행기가 아스팔트 지면에 마찰하며 굉음을 내었고 사람들이 벨트를 푸는 딸깍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2시간 정도 비행하는 내내 내가 무엇하는지 훔쳐보며 주변을 기웃거리던 옆자리 여자도 내릴 준비를 한다. 오긴 왔구나. 우리가 폴란드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한국 여권 소지자인 나와 일행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들어갈 수 없으니 접경지역인 폴란드로 온 것이다. 폴란드 동남부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서로 맞닿아 있어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전쟁을 피해 지금도 폴란드의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잠시 영국 웨일즈에 머무르면서 선교팀과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폴란드에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팀의 리더인 석(Suk)의 결정이었다. 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났을 때부터 계속해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석이 '여기서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직접 가서 돕자'라는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4월 초부터 그러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팀원들은 기쁘게 동의했다. 불난 집에 불 끄러 가자는데 누가 마다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역시 끼워져서 가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크라이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지 않았었으니까. 물론 전쟁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고, 사진 속 건물들이 무너져 내리고 찻길에 시체들이 널려 있던 광경이 머릿속에서 재생될 때는 눈물이 났다. 그러나 그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고통들을 알아서 무엇할 수 있나? 누군가는 아는 것만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알면 알수록 무력감만이 더해진다고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사실 사람들은 고통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화면 속으로만 보던 전쟁을 국경을 넘어 이 땅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통해 볼 수 있고, 그들의 손을 한 번 잡고 사랑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나에게도 좋은 일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이다. 짧다면 아주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동안 우리 팀이 전쟁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필요가 있는 곳에 그것을 공급한다면 좋겠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끌고 걸어가는 팀원들의 얼굴을 보니 그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특히 석은 고민이 깊어 보였다.  


공항 주차장에서 빌린 렌터카를 타고 바깥으로 나가니 벌써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이미 저녁시간이 훌쩍 넘었기에 우선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알디(ALDI)'라는 큰 마트가 보여 그리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나오니 가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팀이 이전에는 결코 들어보지 못한 '먹고 싶은 걸 다 담으라'는 석의 인자한 음성에 마트에 들어간 초입부터 모두가 신이 났다. 폴란드는 유럽 중에서도 특히 물가가 저렴하다고 한다. 특히 모든 요리를 '쉽고 맛있게' 만들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쉐프 토마스는 폴란드의 무와 배추가 한국의 그것과 비슷하다며 기뻐했다. 나는 영국에 오래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물가 비교를 하면서 기쁘게 장을 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영국에서 사는 것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는 석이 예약한 곳으로, 크라코우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은 아파트였다. 장을 보고 나오니 금방 어두워져 차창 너머의 바깥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숙소의 주차장 입구가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계속 그 주변을 뱅뱅 돌아야만 했다.


"이상하다.. 분명 이 주소가 맞는데, 아무리 봐도 주차장이 보이질 않으니."


아파트 대문으로 진입하는 밴의 모습. 이런 경우도 있구나 

운전하던 석은 고개를 갸웃했고, 뒷좌석에 타고 있는 나와 일행은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폈다. 결국 내려서 주소를 확인해보니 흥미롭게도 아파트가 있는 빌딩의 대문을 통과해야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다. 우리 모두 그런 구조를 처음 봤고, 우리가 타고 온 것이 9인승짜리의 승합차였고, 그 차가 겨우겨우 통과할만한 크기였던 대문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우리 모두 '폴란드는 이런 식으로 주차하나?'하는 생각을 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어쨌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대문 하나였기에, 우리는 차가 대문을 사고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차의 진로를 살펴주면서도 생에 이런 광경도 다 보네 하면서 우리끼리 쿡쿡대기도 했다. 그게 우리가 폴란드에서 받았던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우여곡절 후 숙소에 도착하니 크라코우에서의 첫날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의 날들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누구도 몰랐기에 우리는 모두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쨌든 왔으니 그것으로 오늘 할 일은 끝났다. 우리는 창밖 빗소리가 멀어져 가는 걸 느끼면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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