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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y 19. 2022

#2 기쁨의 크라쿠프 쇼핑

폴란드에서의 10일

# 아침 묵상에서 받은 동일한 마음


크라쿠프에서의 두번째 날이다. 우리는 원래 웨일즈에서도 하루에 성경 한 구절씩 묵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에서도 그 묵상을 똑같이 이어가고 있다.


오늘의 구절은 사도행전 4장 28절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개역개정)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 말씀을 보면서 나와 우리 일행에게 들었던 마음은 동일했으리라고 본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일'을 위하여 이곳에 모인 것이다. 그것은 결코 단지 어떤 사람이 결정해서 그리된 것이 아니고, 누군가를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마음으로만도 아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 이곳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기에 우리는 인도된 것이고 쓰임받을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묵상했다. 물론 우리가 한 구절씩 묵상한다고 해도 한 구절만을 따로 떼내어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구절이 나온 맥락 안에서 보아야 한다. 이 구절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는 기적을 행했다. 그리고 성전의 제사장들, 즉 세상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문제삼아 사도들을 공회 앞에 서도록 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결국 처벌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사도들은 풀려나게 된다. 이후 사도들의 동료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앞 구절들에서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핍박한다던 시편 말씀을 인용하며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에 대해 말하며 기도하고 있다. 결국 이 구절은 '환난과 핍박이'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임을, 결국 그것이 행해질 것임을 나타낸다.


맥락으로 보자면 결코 희망적인 구절이 아니다. 환난과 핍박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임을 말하는 구절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고 그것이 우리 믿는 이들에게 구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죽음을 나쁘다고 말하겠는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고 말하겠는가? 결국 나에게 이 구절은 '어떤 것이 닥쳐오든지 간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구절이었다. 나는 그 환난과 지금 우크라이나에 일어난 전쟁을 겹쳐 보았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나.. 인간들이 만든 악의 구덩이 속에서도 가장 선한 것을 피워올릴 수 있는 분을 우리가 믿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절을 희망으로 취할 수 있다. 누군가는 "내 삶의 좌절의 순간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좌절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면서 동시에 거대한 손 가운데에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우리 모두 그분의 '손'으로 행하시는 '계획'임을 기억하며 바깥으로 나선다.


크라쿠프에서 머물던 숙소의 뷰


# 첫 사역 시작_ 물품을 구입하다


우크라이나 사역을 준비하면서 많은 재정의 후원이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재정으로 거의 2천만원에 달하는 금액이 모였다. 열흘 동안 이 돈을 어떻게든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흘려보내야 하는데 아직은 어떤 특정한 연결고리가 보이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석은 분주하게 많은 곳에 연락을 하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으로부터 그곳에도 현재 난민들이 있고, 우크라이나로 들어가고자 하는 버스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그분들을 위한 구호물품을 구입해서 보내드리기로 했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첫 사역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밀가루, 설탕, 파스타면, 커피, 차, 통조림 등등의 물품을 구입해야 했는데, 아무리 대형 마트라도 최소 100여 개의 물품을 구입하면 눈에 띌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차를 두고, 물품을 분담해서 구입하자는 계획을 세웠으나 그런 우리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던 하나의 장소가 있었으니...


출처: 구글 지도


바로 이 창고형 매장이었다.

이곳은 코스트코처럼 대량구입을 위한 장소였기 때문에 물건을 많이 사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보이는 곳이었다.



우리는 큰 카트를 끌고 각자 부여받은 물품들을 위해 전진해 나갔다. 내가 맡은 것은 비교적 가볍고 쉬운 차(tea)였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블랙티를 많이 마신다고 한다. 많은 차 종류가 있었는데 거의 티백이라 비슷비슷해 보였다. 나는 밥보다도 커피 마시는 걸 좋아해서 아무리 인스턴트라도 맛있는 커피나 차 한 잔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는 한다. 그래서 차도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둘러보고 열심히 구글링해 봤지만 이렇다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가격이나 인지도 면에서도 제일 일반적인 립톤의 블랙티를 골랐다. 지금 우리가 사는 것들이 다 그곳에 가서 먹여지고 쓰여질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즐겁고 감사하다. 토마스도 커피 종류를 봉지에 든 것으로 할지 병에 들어있는 것으로 할지 고민하고 있다. 제임스는 '굵은 밀가루'를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분주하게 어떤 물건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넘어야 할 다른 고비는 계산이었다. 어마어마한 물건들의 수량을 체크하고 모자란 것이 없게, 또 정확하게 계산을 해야 했다. 두 명의 계산원이 기억에 남는다. 두 분 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아무리 본인들의 일이라지만 이렇게 많은 수량을 체크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분들의 상반된 태도였다. 한 분은 힘든 기색 없이 모든 수량을 정확히 체크해주려고 애썼고, 우리가 다른 계산대에서도 분주하게 뛰어다닐 때 융통성 있게 필요한 절차를 생략해주는 친절도 보여주셨다. 다른 한 분은 우리의 카트를 보면서 살짝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서 진행을 해주었다. 그 분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사실 이해할 만한 것이다. 나라도 "왜 하필 내가 일할 때 이런 카트가 들어오고 난리야"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쁨의 감정만큼이나 힘든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지나왔는가만 남게 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매사에 주어진 것들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이자고. 막상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면 그러기가 쉽지 않음을 느낄지라도. 우리가 아침에 느낀 이미 예정된 그분의 무한한 사랑과 계획이 우크라이나의 국경을 넘어 이 물건을 사용할 사람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기도해 본다. 우리는 고통과 핍박 너머에 있는 선하신 손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이기에..


이 많은 식품과 물품들이 무사히 우크라이나를 통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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