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해
육아에 있어서 나의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격주 수요일마다 그림책 동아리 모임에 간다. 10시부터 12시 남짓까지 하는데, 아이 방과 후 수업이 11시에 끝나 모임 중간에 나올 계획이었다. 아이가 평소에 나의 그림책 모임에 엄청 가고 싶어 하고 관심을 보였던 게 생각이 나서 고심 끝에 아이에게 물었다.
“인아, 내일 엄마 그림책 모임 가는데 방과 후 빠지고 같이 갈래?”
“어!”
모임은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3월부터 꾸준히 출석하며 안면과 마음까지 터놓은 모임인지라 선뜻 아이에게 제안할 수 있었다. 그만큼 안전하다 생각하기에 동행을 결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모임 동행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제주에 와서는 사실상 첫 번째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어우러진 모임을 자주 경험하지 못한다. 양가가 먼 지방에 있기도 하고 자주 만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데 시댁에서는 아이가 유일한 손자이기 때문에 사촌이 없어 온통 어른들 뿐이라 아이가 시간 보내기 지루하고 힘들 뿐인지라 자주 가지 않게 되는 것도 있다. 자영업을 하는 친정오빠네는 중3 사촌누나와 초1 사촌여동생이 있는데 멀리 살기도 하고 쉬는 날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 교류하기가 어렵다. 이런 상황적인 조건도 그렇지만 엄마인 나의 성향 때문인 듯해 많이 미안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문화센터에서 다른 엄마들은 서로 그룹을 만들기도 하던데 숫기도 없고 관계에 자신도 없던 나는 엄마들 모임에 잘 끼지 못했다. 사실 서울 엄마들과 나이차이도 너무 많이 났고 공통점이 없었기에 다가오기도, 다가가기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아이가 기관에 가니 친구도 사귀고 집에 초대도 하고 싶어 해서 그렇게 몇 번 서로 집을 왔다 갔다 하다가 친구엄마와 언니동생까지 하게 된 아이가 있긴 하지만 편한 관계가 되기까지 그 동생도 나도 많이 노력했다란 걸 서로는 안다. 8년 육아인생 중 만난 유일무이한 아이친구엄마다.
아이친구 가족이 아닌 나의 인연으로 알게 된 지인들을 만날 때 아이를 동행하는 일이 나에게는 정말 큰 도전처럼 느껴지는, 어려운 일이다.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니리라. 이것 또한 엄바엄(엄마 바이 엄마)이겠지. 그럼 나는 왜 그럴까. 남편은 우리 성향이고 그런 모임을 안 해 버릇해서 그렇다는 데 나에게 어떤 결핍과 어떤 상처가 있기에 그렇게까지 힘들어하고 두려워하는 걸까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항상 궁금했다. 그러나 그 답을 찾지 못했는데, 이번 그림책모임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아이와 동행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지는 나에게 깨달음을 준 그림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스포주의. 읽고 싶으신 분은 스킵 추천) 이 그림책에서 피아라는 친구가 그린 그림종이가 사라져서 하는 행동을 보면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오롯이 자신의 그림 종이 찾기에만 빠져있다. 그런 피아를 보며 목적지향적인 아이, 나쁜 아이, 이기적인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책 끝에 가보니 이 피아는 결국 그림종이를 찾게 되는 데 어떤 사람은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종이 찾는 일에만 몰두한 피아가 괘씸했는지 피아가 찾은 그림종이를 찢어버렸다. 피아는 산산 조각난 그림 종이를 다시 붙였고 그림을 자신의 친구에게 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제일 뒷속지에는 수화로 표현된 피아의 이름이 그려져 있다. 우리는 피아가 청각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 수 있었고 말을 할 수 없던 피아는 그림으로 자기 마음을 친구에게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피아에 대해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를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마냥 띵했다. 내가 아이와의 동행이 어려운 이유는 관계에 자신도 없지만 낯선 환경에서 긴장도와 불안도가 높아지는 편인데, 대화 중 끼어들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의 돌발 행동을 보면 화가 나고 당황스럽고 더 불안해지고 긴장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는 아이답게 행동할 뿐 그 행동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나의 문제였다. 아이로서는 어쩌면 배워가야 하는 것들이자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당연한 행동들인데 그런 아이를 미성숙하고 부족한 존재로만 보고 훈육이나 회피를 했던 나를 반성하게 된 시간이었다.
그저 피아와 다른 이들처럼 아이와 나는 감각이 다른 것뿐인데 왜 나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아이가 나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걸까. 서로 다른 우리에게 일어나는 오해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고 이 그림책은 말해주고 있다. 항상 아이를 대할 때 떠오를 것 같은 이야기다. 다 읽고 난 후 선생님께서 준비해 오신 석고 붕대로 하고 싶은 수화의 손 모양을 골라 본떠보는 활동을 했다. 아이의 손을 만지며 모양을 만드는 시간이 참 좋았다. 방학이 시작되고 시간은 함께 많이 보내지만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점심을 사주시겠다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곳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아이는 집에 가고 싶어 했지만 이런 다수의 모임을 보여주는 것이 드문 기회이기에 아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식당에서는 아이에게 절대 스마트 기기를 보여주지 않지만 처음으로 융통성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엄마도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종의 사회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달까. 앞으로도 동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서툴지만 피아를 생각하며 조금씩 용기를 내야지.
그렇게 나는 집에 돌아와 뻗었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실내였는데)
함께 해서 즐거웠고 고마웠어. 사랑해.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