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도 찢어지고
지난주 목요일 오후 5시. 샤워를 했다. 우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2층 다락방을 오가는 소리였다. 요즘 폭염으로 낮에는 밖을 전혀 나가지 못하는 아이가 에너지를 발산하는 소리였다. 우리 집에서는 흔히 있는 일상이라 그러려니 했다. 다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는 데 갑자기 비명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 부딪혔겠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이는 얼굴을 이불에 파묻고 울고 있었다. 잠깐 엄마가 보자고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피가 이불에 묻어있고 아이의 이마에서는 피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어쩌다 그랬냐고 물으니 레고를 줍다가 식탁모서리에 부딪혔단다. 그냥 상처라고 하기엔 심각해 보였다. 찢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병원에 가기로 했고 6시가 다 되어 진료종료된 곳이 많을 텐데 어디 병원으로 가야 할지 몰라 일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고 머리는 말리지도 못한 채 아이를 얼른 차에 태웠다. 하필 퇴근시간이라 시내로 가는 길이 꽉 막혀 평소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렸다. 운전하는 도중 남편에게 연락이 왔고 남편이 알아봐 준 정형외과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데스크에 접수를 하는 데 아이 얼굴은 성형외과를 알아보셔야 하고 여기서 쓰는 항생제가 아이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말에 황당했다. 남편이 전화로 아이 얼굴이 찢어졌고 봉합 및 치료가 가능한지 물어보았을 때는 가능하고 빨리 오셔야 한다고 했다던데. 막상 오니까 다른 말을 해서 살짝 멘붕이 왔지만 그 자리에서 진료가능한 성형외과를 알아보았다. 한 성형외과는 예약 핑계를 대며 받아주지 않았고 다른 곳은 수술 중 이라며 곤란하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이라도 괜찮다고 하니 그때도 수술예정이라 어렵다고 진료를 거부했다. 진료 거부를 피부로 체험한 순간이었다.갈 곳이 없어진 나는 일단 급하게 상처 드레싱이라도 받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곳에서 진료를 받겠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찢어진 게 맞고 혹시 뼈도 부러졌을지 모르니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정형외과에서 원칙상 얼굴은 꿰매지 않는다며 다른 성형외과를 추천까지 해주시며 몇십만 원이 들것이라고 하셨다. 정형외과에서는 얼굴 상처는 테이프로 불이는 비봉합 치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흉터 남는 것이 걱정되시면 비봉합치료가 끝나고 연고를 보여주며 4만 원짜리인데 병원에서 이걸 구매해서 흉터를 제거할 수 있다고 했다. 일단 나는 급한불부터 끄고 보자는 심정으로 비봉합 치료부터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성형외과를 돌아다녀볼 생각이었다. 약처방받는 것까지 쉽지 않았다. 약국에 갔더니 약국에 아이용 시럽이 없다며 아이가 알약을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셨고 아직 알약을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조금 부셔서 줄 테니 씹어먹으라고 하셨다.
우여곡절 끝에 치료와 처방이 끝이 났다. 남편도 일을 마쳤다기에 남편 회사 쪽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가 햄버거가 먹고 싶다기에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긴장이 풀리면서 내일 아침부터 성형외과를 돌생각만으로도 입맛이 없어지고 힘이 들었다. 나는 내일 아침에 먹을 빵을 사가자고 했고 빵집 가는 길에 남편이 한 병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배님 아들은 여기서 꿰맸대. "
바로 정신이 번쩍 뜨이면서 "가보자. "라고 말했다.
다행히도 병원은 늦게까지 진료를 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상처를 보시더니 찢어진 게 맞고 경계에 있어서 꿰맬지 말지는 엄마가 선택하라고 하셨다. 찢어진 상처는 긁히거나 쓸린 상처보다 피부가 벌어져 있어서 세균 감염에 취약하다는 걸 남편 때문에 익히 알고 있었다. (남편은 예전에 무릎을 에스컬레이터에 찍혀놓고는 밴드만 붙이고 다니다가 상처가 노랗게 곪아서 그걸 다 긁어내고 꿰맨 적이 있다. ) 나는 그때 생각이 났고 덕분에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꿰맬게요. "
아이는 수술침대에서 발버둥을 쳤다. 남편은 아이가 상상력이 좋아 겁이 많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반면에 진짜 용감했던 건 본인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는 행동이다. 선생님 손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고 그런 대담한 행동을 하는지 대단하면서 답답했다. 절대 쓰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써야 할 것 같았다.
"얌전히 꿰매면 엄마가 장난감 사줄게. "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장난감 매직인가. 마취할 때만 따끔해하고 꿰맬 때는 잘 있어주었다. 바늘이 아이 눈썹 쪽 살을 뚫고 나오는 데 여린 살이라 그런가 피가 더 나와 눈쪽으로 흘렀다. 상처부위가 눈이 아니라 눈썹과 이마 쪽이라 천만다행이라며 마음을 쓸어내렸지만 막상 꿰매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샤워를 하지 말고 돌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처치가 끝나고 남편에게 내가 잘 보살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은 아홉 살인데 지킨다고 지켜지냐며 나를 위로했다.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 무렵 BCG 접종을 하러 갔다가 설소대가 짧다는 말을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지금은 가위로 톡 하면 되지만 다섯 살이 넘어가면 수면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위로 자르기로 결정하고 살짝이지만 입에서 피가 나는 아이를 보고 설소대 짧은 게 꼭 내 탓 같아 너무 미안했고 눈물이 나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놀리며 위로했다. 아이가 다치거나 아이에게서 피를 보는 일은 엄마로서 참 견디기 어려운 일인 건 확실하다.
아이는 꿰맨 이후로 잘 아물고 있고 오늘 또 병원에 소독하러 간다. 이번주 주말에 실밥을 푼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조심해야지.
모두 건강하자 아이들아.
이미지출처: 제주스톡064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