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근
"엄마아아아아앙, 오늘 방과 후 안 가면 안 돼요? "
"????????"
"아잉, 어젯밤에 11시에 자서 피곤하단 말이에요. 네? 네? "
이럴 때는 또 온갖 애교를 부리며 나의 마음을 녹이는 여시방댕이 아들.
"그럼 오늘은 집에서 엄마랑 있자. 오후에는 상처소독하러 병원 다녀오고. "
"오예~!"
육지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작년 육지에서 아이는 국제형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를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전교생이 4시에 하교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온전한 내 이름 세 글자로 사는 하루 여섯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숨통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고 그 런 나를 남편도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아이를 국제형 대안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아이를 온전히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학교는 유치원보다 일찍 끝나 하교 후 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아이를 학원 뺑뺑이 돌리거나 매 학기와 긴 방학을 운(추첨)에 기대어 돌봄을 신청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어려서부터 꾸준히 배워온 영어를 한 번쯤 일상에서 써 볼 수 있도록 환경을 아이에게 제공하고 싶었다. 대안학교를 저학년에 경험하고 고학년에 국공립학교로 돌아와도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그때는 일을 쉽게 뺄 수 없었기에 아픈 아이도 학교에 보내야 했고 방학기간에 하는 캠프에도 꼭 보내야 했다. (많은 워킹맘들이 그래왔고 그렇게 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 이틀 집에서 쉬면 나을 감기를 일주일 동안 입원해야 하는 폐렴이 오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놈의 일이 뭐라고.
제주에 오면서 아이는 시골 작은 동네 국공립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나는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준비하는 전업맘이 되었다. 온전히 아이로만 채워진 삶이 무서웠고 남편의 권유로 아이가 학교에 간 시간에는 자격증을 준비할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지만 시간이 흘러야만 하는 육아와 자격증 공부는 결이 비슷하다. 어느 정도 엄마의 자리가 굳건히 잡힐 때쯤 시작될,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나의 사회생활. 매일 나의 계획과는 멀어지는 아이의 성장과는 나의 하루. 육아라는 것에는 애초부터 계획이라는 게 성립하지 않는 것인데 자꾸 나는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따라 주기를 바라고 또 좌절하기를 무한 반복하며 엄마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이번겨울을 지냈다. 엄마라는 왕관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무게는 감히 엄마가 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나는 워킹맘, 전업맘으로 나누어 말하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둘 다 해본 엄마로서 아이가 우선시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워킹맘이 되어보기 전 전업맘이던 시절에 나는, 스스로에게 무(無) 생산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어 괴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의 소중한 아이가 나의 시간을 먹고 자라고 있으니. 긴긴 겨울이 지나고 나는 엄마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 전업맘, 특히 육아를 워킹의 일부이자 전부로 보기 시작했다. 내가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남편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때론 힘이 들어 지쳐있는 모습도, 다시 힘을 내어 나아가는 나의 모습 모두가 아이를 키우는 일부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점차 편해졌다. 정말 그랬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던가. 내가 나와 잘 지내기 시작하고 남편과의 대화도 부드러워지니 아이는 정서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이해력도 상황판단력도 문제해결력도 쑥쑥 자라고 있다. 감기에 한번 걸리면 한 달을 항생제를 먹었던 아이가 이제는 감기에 걸려도 하루 집에서 돌보면 금방 낫는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방학한 지 2주가 흘렀다. 나는 학기 중 보다 훨씬 바빠졌다. 방과후 학교를 보내긴 하지만 길어야 두 시간 반을 하고 오기에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마트나 은행에 다녀오면 금방 끝이 나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오지 않기에 집에 오면 주방을 떠날 수가 없다. 돌밥돌밥. 삼식이 아니고 오식이다. 가까운 곳에 사는 친한 친구가 놀러 오면 어찌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계속 일을 했으면 어려웠을 일들이라 생각하니, 이 또한 지나가고 있는 순간이라 생각하니 힘들기보다 아쉬움이 더 앞선다. 까마득하던 개학날이 이제는 조금씩 보인다. 2주만 지나면 또 학기 시작이라니. 나의 특근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날수록 방학 특근이 수월하다는 건 엄마인 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걸까. 아이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걸까. 우리는 둘 다 성장하고 있다는 거겠지.
오늘 병원에 소독핑계 삼아 아이와 도심마트에서 찐하게 데이트를 했다. 내일은 방과후 학교에 간다고 했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와의 파자마파티가 있는 날이네. 특특특특특근이닷. 히히. 사랑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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