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65벌의 옷을 비웠다.

퇴사자의 일상 회복기

by 그레이스
'언젠가 필요하겠지'의
미련을 버리고 새 옷장을 얻었다.


나의 옷장은 참 신비롭다.

항상 반팔과 긴팔, 니트와 티셔츠, 입던 옷과 빨아놓은 옷이 뒤섞여있다.

정리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매번 마음먹고 싹 뒤집어 정리를 해도 금세 본색을 드러내고 어수선해다.





옷장을 열면 온통 입지 않는 옷뿐이라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정작 입는 옷은 옷장 안에 자리가 없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대체 원인이 뭘까.


옷을 꺼낸다. → 입을지 말지를 판단한다. → 판단이 애매하다. → 그럼 일단 보관한다.


이것이 평소 나의 옷 정리 방식었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 이건 기본 아이템이니까 있어야지..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10년째 입지 않은 옷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돌이켜보니 금까지 내가 한 것은 정리가 아니라 똑같은 옷을 들고 이리저리, 쟁여두는 위치만 바꾸는 일에 불과했다.



정말 필요한 옷만 남기고 싶다.



이번엔 정리에 앞서 필요한 옷이 얼만큼인지 적어 보기로 했다. 현재 생활 패턴을 고려 카테고리 표를 만들었다. 카테고리는 집에서 입는 생활복, 운동용, 가까운 외출, 먼 외출, 겉옷으로 정했다.


- 집 : 집 앞까지 외출이 가능한 상, 하의

- 운동 : 산책과 걷기 운동용

- 가까운 외출 : 가족끼리의 가벼운 외출

- 먼 외출 : 결혼식, 모임 같은 공식 약속

- 절별 겉옷


그리고 구분에 따라 준을 정하고 요한 양을 었다. 다 적고 보니 사계절을 모두 감당하는 데 40벌 정도면 충분할 듯하다. 적당한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20대 때부터 이래저래 모은 옷들을 상당히 많이 줄여야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옷장 안의 모든 옷을 꺼내어 미리 정해 둔대로 옷을 분류했다. 옷을 집어 들고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비슷한 겨울 바지가 10벌이나 되네. 이게 필요한가? 최소 기준과 너무 차이가 나는데?'라고 질문을 바꾸니 '아니, 1~2벌이면 충분하지'로 답은 명료해졌다.


20대 때 입었던 H라인 치마와 바지, 세일한다고 무턱대고 구매한 어울리지 않는 니트, 한창 헬스장에 다니겠다고 모은 레깅스 등등.. 지금은 필요 없는 옷들이 65벌이나 된다.




남은 옷들 중 당장 입을 가을, 겨울 옷을 신중하게 골라 옷장에 모두 걸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아끼는 옷들과 정장류를 따로 보관했다.


드디어 좋아하는 옷과 필요한 옷이 잘 정리된, 내 취향에 맞는 옷장이 완성되었다.

어제까지는 그저 그랬던 옷들이 지런히 걸려있으니 왠지 예뻐 보인다. 히 억지로 려있던 사이즈 작은 옷들이 사라지니 어찌나 후련한지.


이제는 무엇을 골라 입어도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신경이 곤두서는 일은 없겠다. (입을까 말까 하는 옷을 입고 외출해서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에 하루 종일 화가 나는 일 말이다.)






처음 생각대로 40벌지 줄이는 것은 어려웠지만 가지고 있는 옷 중 절반 정도를 '완전히' 덜어냈고 장의 빈칸을 가지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옷을 비롯하여 무언가를 비우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언젠가 필요하면 어쩌지?, 혹시 몰라'의 미련 때문에.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도 그 물건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99% 라는 것. 혹여 다시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그 상황에 맞는 다른 선택을 하면 된다. 아무 문제없다.


쓸모를 다한 물건들을 이제 그만 놓아주자. 우는 것은 삶에 새로운 것들을 선택하고 채울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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