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하나씩 정리하고 얻은 것

퇴사자의 일상 회복기

by 그레이스
매일 하나씩,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도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한숨이 났다.

뭐 하나를 쓰려고 싱크대 서랍을 열어도, 수납장을 열어도 모든 곳이 빠짐없이 뒤죽박죽이다. 나의 무기력이 집안 곳곳에 무질서로 번져있었다.

식구들이 모두 나가고 난 뒤 혼자 남아 정리를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서랍과 수납장의 물건들을 모두 꺼냈다.

쓸만한 것들, 비워야 하는 것들을 분리하고 쌓인 먼지를 닦아냈다.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진지했다.


상자째 사놓은 칫솔, 1+1이라고 쟁여둔 대용량 바디 로션, 유통기한이 지난 약병들과 몸(다이어트)에 좋다고 사모은 건강식품 등등.. 어지러웠던 내 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는 이런 걸 치울 시간이 없었잖아'라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문득 지친 모습으로 싱크대 앞에 서있던 친정 엄마의 웅크린 뒷모습이 생각나 속이 상했다.

여러 가지 묵은 감정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묵묵히 물건들을 꺼내고 닦고 정리하는 일을 반복했다.


쓸모를 찾아 자리를 잡아가는 물건들이 보기 좋았다. 가지런히 놓인 물건들을 보며 조금씩 안도했다. 불필요한 것들이 하나씩 걷어지고 있었다.




매일 내 손으로 정리되는 집안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내 자리를 찾았다.

바짝 날 서있던 감정이 무뎌졌다.

내가 좀 더 잘했다면,

내가 좀 더 신경썼다면 좀 더 오래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이따금씩 떠오르던 자책의 감정도 사그라들었다.





가장 큰 쓰레기봉투 하나 가득, 묵은 것들을 비워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서랍과 수납장을 뒤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원하는 장소에 정확히 자리한다. 나도, 집안의 물건들도 제자리에 있다. 모든 것이 정돈된 집을 둘러보며 안도감을 마음 하나 가득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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