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잡담
중학생 때,
배가 꼬일 듯 아파 학교도 가지 못하는 나를 보고
괜찮으냐는 말 보단, 짜증 섞인 한숨을 먼저 내쉬었던 엄마.
‘아픈 건 미안한 일이구나’ 생각하며,
나는 아픈 배를 움켜 잡고도 울지 않았다.
서러운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엄마의 한숨이 더 무서웠다.
내가 아프다고 일상을 멈출 수 없는 엄마의 처지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던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일으켜 세워 병원에 갔다.
자가용이 없으니 걸어, 이른 아침 문을 연 '동네 병원'을 찾아다녀야 했다.
아픈 배를 움켜 잡고 어정쩡 걸어갔을, 빼짝 마르고 작은 중학생 여자아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아 애잔하다.
고등학생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새벽, 잠결에 침대에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넘어지며 턱을 찧었다.
턱 아래 살이 제법 크게 찢어져, 뜨끗한 피가 아래턱을 타고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굵고 짙은 선혈을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엄마, 엄마. “
턱을 부여잡고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그날도 역시 화를 냈다.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픔보다 걱정과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겨우 지혈을 하고, 역시나 아빠가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지금도 한 번씩 거울을 보다 아래턱을 만져본다.
감쪽같이,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아물었다.
그 뒤로 여직 엄마에게 그 일을 두고 서운했느니 서러웠느니 하는 말들은 일절 하지 않았다.
다시 그날의 기억을 상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먼저이고, 괜히 그런 일을 트집 잡아 젊은 엄마를 소환하여 무릎 꿇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음이다.
이제 와서 미안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억을 30년 가까이 끌어안고 있는 것은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니다.
그냥 기억이 그렇게, 그런 식으로 자리 잡았을 뿐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까짓, 서운할 것이 뭐 있냐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떠올려 입에 담고 싶지는 않다.
과거 일들을 무던히 캐내서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다.
잔병치레가 별 없는 큰 아이가 유난히 늘어지던 날,
이마에 손을 짚으며 큰 아이가 나를 부른다.
“엄마~”
아이의 이마가 뜨거워 열을 재니, 38도가 넘었다.
깜빡이도 없이 불현듯 내 마음이 버럭 한다.
"그러니깐 따뜻하게 입고 나가라고 했지! 지금도 반팔 입고 있잖아. 긴 팔로 갈아 입어!"
나의 감정 폭발에 아이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했다.
‘뭐 이런 매정하고 정신 나간 엄마가 있나’
내가 나를 경멸하면서, 나의 이런 매정한 모성의 발로가 궁금해진다.
아이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도 아깝지 않을 마음인데,
아픈 아이를 두고 막말을 쏟아 내는 나의 이 잔인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하.
이 분노는 나에게 하는 말들이었어.
아이가 이렇게 아플 동안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
아이가 아픈 건 잘 챙기지 못한 나 때문이라고.
한편으론, 아이가 아픔으로써 루틴 하게 흘러갈 일상에 작은 균열이 가는 것을 못 견디는
나의 독선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에게 괜한 설움의 기억을 남겨주지 않으려 그동안 얼마나 애를 썼는데, 매번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육아는 늘 성장과 좌절의 반복을 경험시킨다.
내리 받은 걸 기어이 티를 내고 엉뚱한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려는 이 심보가 괘씸하면서, 어리석고 찌질하다.
해열제와 따뜻한 물 한잔 들고 딸아이 방으로 들어갔다.
"아까 엄마가 화내서 미안... 네가 아프다니깐 걱정이 돼서."
"잉? 걱정되는데 왜 화를 내?"
아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게 말이여… 미안해 “
큰 아이가 아기처럼 내게 안긴다.
매번 못난 엄마를 이해해 주는 아이에게 송구하다.
내면 속 무의식의 상처가 일상생활 중 이렇게 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시킨다.
굳이 헤집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튀어나와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그런 식이 아니면 숨어있는 내면의 상처를 알아챌 재간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살아가는 내내 크고 작은 상처들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예민하게 만들고, 나를 형편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 것이라는 명징한 사실 앞에서 내가 결심한 것은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드러난 상처를 감추지 않고 잘 치료하여 흉 지지 않게 잘 치료하는 것.
나는 내 인생을 그렇게 도우며 살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