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잡담
첫째가 7살, 유치원 시절의 이야기이다.
유치원 하원 차량에서 내린 아이의 눈 아래 피부가 뻘겋게 쓸려 달아올라 있고, 그 위로 연고가 잔뜩 발려져 있었다.
아이가 하원하기 10여분 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하원 차량을 기다리다가 큰 아이가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며, 아이의 얼굴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가슴이 떨렸다. 첫 아이였고 나는 여전히 초보엄마였다.
"담임선생님께 연락받으셨죠?" 라며 차량 선생님이 먼저 운을 떼셨다.
차량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학원차량을 타기 위해 아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남자아이가 먼저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달려오다가 실수로 첫 째를 밀어 첫 째가 앞으로 넘어졌고, 그 바람에 바닥에 얼굴이 쓸렸다는 것이다.
첫 째가 울지 않았고, 괜찮다고 해서 우선은 급하게 연고를 발라주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큰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얼굴과 등을 쓰다듬으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자초지정을 설명하는 모습을
큰 아이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는 두 입술을 꽉 다물고 양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었다.
애써 담대한 척하는 아이의 마음이 애가 쓰여 우선은 알겠다고 하고 선생님을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의 다친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자니 걱정스러운 마음과 괘씸한 마음이 교차했다.
바로 눈 밑이라, 자칫 잘 못하면 눈을 다칠 뻔했겠구나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흐응 어떡해?! 안 아팠어? 누가 밀었어? 안 울었어? 왜 안 울었어. 울어도 되는데."
나의 쉴 새 없는 폭풍 질문을 아이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안 아팠어."라고 짧게 대답했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도 울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대견함과 동시에 속상한 마음이 요동쳤다.
아이는 이런 태도를 어디서 배운 것일까, 생각하니 한 없이 슬퍼졌다.
어린 내 모습이 교차되어 보였다.
이 어린아이에게 넘어져서 아프고 놀라도 울지 말고 참아야 한다고 가르친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국민학교 2학년쯤에 있었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작은 건널목 하나와 큰 건널목 하나를 건너, 작은 걸음으로 20분 정도를 더 걸어가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도 다름없이 작은 건널목을 혼자 건너고, 코너를 돌면 바로 보이는 큰 건널목을 건너던 참이었다.
큰 건널목을 거의 다 건너던 순간 오토바이가 달려와 나를 쳤다.
신호등이 여전히 파란색이었는지, 빨간색으로 바뀌던 참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오토바이가 나를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다행히 나를 살짝 치고 멈췄다.
지나가던 주변 어른들이 놀라 나에게 다가왔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아저씨도 얼른 다가와 나의 상태를 체크하며 다친 곳 없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놀라 아픈지도 몰랐다.
지금 와 더 놀라운 건, 나는 넘어짐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 별 일 아닌 것처럼 굴었고 그런 나의 내면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괜찮아요!"
아저씨는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겠냐고 물었던 것 같고, 나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며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저씨는 짐짓 다행이다 싶은 표정이었다고 기억하는 건, 어른이 되어 회고하던 중에 나타난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엄마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왜 그랬던 것일까.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바쁜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둘 다였던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위해 애썼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렇지 않다고, 나는 괜찮다고 알리기 위해 우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입은 웃고 눈은 겁에 질려있었을 그날의 유독 작고 마른 어린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자꾸 머릿 속에 그려진다.
큰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차량 선생님에게 들었던 자초지종을 다시 한번 설명하시고, 아이를 걱정해 주셨다.
평소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에 만족하고 있었고, 선생님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심 높게 평가하고 있던 참이라 우선은 별말 없이 넘어갔다.
첫 째를 밀었다는 그 아이가 누군지, 그 아이 부모는 그 사실을 아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아이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고, 약만 잘 바르면 된다고 했으니 한 번은 넘어가겠다고 후한 인심을 써보기로 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남편과 가슴을 쓰려 내리던 밤이었다.
그날이 있고, 몇 년이 더 흐른 뒤 막둥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연락이 왔다.
친구와 부딪쳐서 넘어지는 바람에 막둥이 오른쪽 볼이 쓸렸다고 했다.
아이가 울지 않았고, 괜찮다고 해서 연고를 발라두었다고 했다.
집에서 살펴봐달라는 연락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사진을 한 장 보내주셨다.
막둥이의 한쪽 볼이 쓸려서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그리고 막둥이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집에서 말도 못 하게 애교쟁이에 어리광쟁이인 막둥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의젓한 표정이었다.
대를 이어 반복되고, 형제로 이어지는 지독한 유전자 정보에 섬뜩해지기까지 했다.
마음껏 울고 웃는 아이이길 바랐는데, 아이들은 어느새 체면을 차리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이 것이 긍정적인 신호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이건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수 있는 것도
그러라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태어나 지금까지 서서히 물들어온 것이겠지.
내가 내 부모에게 이어받았 듯이 아이들도 내게서 물려받는 삶의 태도일 테지.
그것이 자주 무섭다.
아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울고 싶을 땐 그냥 울어도 괜찮아."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하나도 안 아팠어!"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용감하네. 우리 딸..." 하고 꼭 안아주면서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어쩐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닮지 않길 바라는 부분만 쏙쏙 빼다 닮아가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는 훨씬 더 현명한 아이들이게 경이로움을 느낀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의 묵혀둔 내면을 무수히 들여다보는 날들의 연속이다.
그래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프면서도 성숙된 일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