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책을 읽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
1999년 4월 2일.
2017년 5월 1일.
2019년 2월 17일.
2022년 9월 9일.
2023년 7월 4일.
무작위로 고른 어느 날, 우리는 온전하게 그날을 기억할 수 있을까?
살아온 모든 날 중 내가 온전히 1분 1초 단위로 기억해 낼 수 있는 하루는 존재할 수 있는가.
불가능이다.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열정적으로 찍어대나 보다.
하지만 그것마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조작할 수 있을 뿐이다.
완전한 진실을 결코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허망한지.
특히 혼자 있는 이 순간은 얼마나 처량한지.
아무도 모르게, 심지도 나조차 모르게 완벽하게 소멸하고 말 가련한 신세가 아닌가.
오랫동안 그 생각 안으로 침잠하고 나면 미쳐버릴 것 같다.
살아있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이런 생각조차 무의미하니 그냥 집어치우고 잠이 자라고.
그렇게 점점 우울해져 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내가 완전히 미쳐버리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단 하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마저도 책 한 권은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라 자신한다.
자신한다는 것이지 자랑한다는 것이 아니다.
손에 쥐고 있었다는 것이지 제대로 읽었다는 의미 역시 아니다.
어떤 대단한 성취를 위함이 아니라 그냥 그것 외에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으세요. 대단하세요."
하는 소리가, 끔찍하게 싫을 때가 있다.
너무 창피해서 무례하게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어질 만큼.
독서하는 행위는 그냥 내가 완전히 침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를 붙잡고 있는 구원의 동아줄 같은 것인데, 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것은 '사회 부적응자'라는 괜한 낙인만 찍히고 말 것 같아 삼킨다.
물론 책을 읽는다는 행위로 허세를 떨어보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빌려 읽고, 사서 읽고, 선물 받아 읽은 책들에 파묻힐 때쯤 되면,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알게 된다.
그만큼 읽고도 그 모양이냐는 말을 듣고야 말 것 같은 두려움에, 숨어서 읽게 된다.
정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바보 천치가 되는 것 같다.
읽는 것과 아는 것, 그리고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완전히 다른 세상의 것이라는 사실만 더욱 명징해질 뿐이다.
세상은 어지럽고.
세상은 눈이 멀도록 눈부시고.
인간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체라는 사실.
알다가도 모를 세상의 이야기들이 온갖 책 속에 담겨있고.
나는 그것을 제대로 소화도 못하고 꾸역꾸역 집어넣기만 하다가 속만 상한다.
그렇게 책 속의 지식을 게걸스럽게 주어 담으면서, 이 것을 이용해서 '저 사람을 죽여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책은 독이 되고 만다. 그런 날은 반드시 책을 덮고 잠이나 자야 한다.
독서는 이것으로 '저 사람을 살려야지'로 끝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려면 이젠 책을 덮고 일어나야 하는데.
독서는 나를 천국으로 안내한다. 나만 즐겁다.
하지만 오래 앉아 읽다 보면 다시 연민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또 책을 덮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인생은 모순이다.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속 편한 소리나 지껄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