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선순환이 이룬 꿈같은 사회
감사한 마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안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은 어디쯤부터가 다른 것일까?
우쿨렐레 무료강의가 있다길래 신청했다.
정해진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으면 폐강된다고 하는데, 아슬아슬 한가보다.
강사님이 '혹시 함께 수업을 들으실 분들이 안 계실까요?' 문자로 물어보시는데, 평일 오전 시간대에 우쿨렐레 강의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하려니 강사님께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마땅히 생각나는 분이 없는데... 주변에서 한 번 찾아 물어볼게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이내 <답글 감사합니다.>라고, 강사님이 답장을 보내셨다.
아... 이런 식으로 답을 한 사람이 나 밖에 없었나?
혹시 내가 괜한 기대를 드렸나 싶어 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어제부터 두 번이나 전화를 하셨다는데, 계속 전화를 받지 않다가 드디어 연락이 된 나에게 강사님은
"연락이 잘 안 되시네요." 하신다.
"아, 죄송합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고 혹시 수업에 대표가 필요한데... 해 주실 수 있으세요?"
"대표요? 아... 대표가 뭘 해야 하나요?"
"그냥 제가 알려드리는 사이트에 들어가셔서 인증만 해주시면 되는데..."
"아... 그럼 그럴게요."
"근데 연락이 잘 안 되셔서... 되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 요 근래 조금 바빠서요"
"연락이 잘 안 되면 안 되는데... 그럼 그냥 제가 다른 분 알아볼게요."
"아, 네. 그럼... 죄송해요."
강사님의 말끝마다 "아, 죄송해요."라고 대꾸하면, 강사님은 다음 말을 바로 옮기지 못하고 반템포씩 때를 놓친 사람처럼 당황해하셨다. 아무래도 나의 과도한 굽신거림이 조금은 부담스러우신 것 같기도.
그게 또 죄송해서 죄송하고.
평소에도 나는 대부분 그런 식이다.
내가 미안해야 할 일이 마땅히 없음에도, 습관적으로 '죄송합니다.'라고 시작하고 본다.
다행히 상대는 대부분 그런 내 말에 "아니에요. 제가 죄송하지요." 혹은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직접적인 표현이나, 그런 유사한 의미의 말로 응답하기에 특별히 억울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흐뭇해지는 쪽이 많다.
얼마 전에는 벼르고 벼르다, 아이들 패딩 점퍼와 교복을 세탁소에 맡기려 무료로 수거배달이 가능한 세탁소에 연락을 했다.
"패딩점퍼 드라이 맡기려는데 수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한 벌로는 못 가고요" 하고 남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아, 패딩 2벌이랑 교복 한 벌 맡기려고요."
"아, 네. 그럼 저녁에 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무료 수거를 해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자영업자의 장사 수완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하고 애잔해지는 것이었다.
세탁을 맡길 생각도 없던 남편의 겨울 코트까지 꺼내 함께 맡기기로 했다.
그럼 4벌이 되니, 세탁소에서도 영 이문(利文) 없는 장사는 되지 않을 것이다.
약속한 시간에 찾아와 주신 세탁소 사장님께 옷을 전달하면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네다섯 번 이상은 한 것 같다.
"죄송한데, 패딩 소매 부분 조금만 더 신경 써주세요."
"네, 네."
사람이 그럴 마음이 없다가도 상대가 너무 저자세로 나오면 괜한 권위의식이 생기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죄송하다느니 감사하다느니' 말을 하면서도, 혹시나 상대에게 괜한 주도권을 주는 모양새가 될까 염려하는 이유다.
괜스레 그럴 마음도 없던 선량한 사람의 마음에 '되지도 않는 완장'을 억지로 씌어 주고 마는 꼴이 될까, 그것마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다행히 세탁소 사장님은 '내가 이 정도 수고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주고 있다.'라는 마음은 전혀 보이 않으셨고, 오히려 인자한 미소를 연신 지으며 "네, 네.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가셨다.
그래, 그럼 모두 좋은 것이다.
내 마음을 또 그대로 곱게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마음이 어딨을까 싶어서 좋았다.
언젠가는 나의 이런 순하고 약한 마음을 이용하여, '잘 됐다!' 하는 심보로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 괜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보며 애써 채워 온 인류애가 속절없이 새어나가던 날도 있었다.
때문에 나도 내 실속 챙기면서 똑 부러지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내 '그래서 뭣 하겠다고.' 싶어진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성질에도 안 맞게 눈에 힘을 주고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면 내 몸과 마음만 축날 뿐이었다.
결국 내 손해다.
나는 그랬다.
미안한 마음은 상대를 측은하게 생각하는데서 나왔다.
측은한 이가 열심히 살고 오히려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나왔다.
타인의 배려를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머지 꼴랑 돈 몇 푼으로 타인의 배려를 돈으로 매수하려 한다. 나는 그것이 너무너무 꼴 보기가 싫었다.
그러니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은 본능 같은 것이었다.
어디 비굴하게 살아서, 못 먹고, 못 입고 자라서, 서러움이 몸에 배긴 자라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약자의 것이 아니라 강자의 마음이다.
당연한 것이 아님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기꺼이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또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 일인가.
다시 말해, 내가 누군가로부터 감사와 배려를 받고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바로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니 미안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람을 만난다면,
'저 사람 참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구나.'
'내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사랑을 받고 있구나,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