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자의 변명 같은 거.
저는 그게 뭐가 되었든 정성을 다해서 하는 편이에요.
SNS에서 자주 보는 인친이 자신의 수다 '라이브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전 그 말이 참 좋아서 일기장에 적어 놓고 오랫동안 되새겨보았어요.
최선을 다해서 살아요.
치열하게 살아요. 열심히 살아요.
이런 말 보다 뭔가 더 진심으로 다가왔어요. 제 취향이었던 거지요.
극도로 게으른 저는 열정, 몰입, 성실 이런 단어만 들어도 이미 지쳐버리는 사람이거든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빈틈없이 살아야 한다는 소신들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지만
제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 비하하기도 하고 그래서 우울해지기도 해요.
너무 내가 내 삶을 함부로 낭비하는 것 같아서 내 인생에 대한 직무유기?
그런 기분이 들면 남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져요.
그런데 정성껏 하루를 보내는 건, 어쩌면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요, 이런 거예요.
반찬가게에서 주문하는 밑반찬이라도 그릇에 하나하나 이쁘게 정성을 다해 담아내는 거요.
오늘은 안방 화장실 샤워부스 하수구 청소를 아주 정성껏 하는 거요.
오늘은 막둥이 머리를 아주 정성껏 묶어주는 거요.
대부분 양치만 겨우 하다가, 어느 날은 아주 정성껏 스킨로션 에센스 수분크림 선크림까지 바르는 거요.
남들에겐 별 볼일 없어 보여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누구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 만족이거든요.
그냥 내가 내 하루를 통으로 날려 먹은 것만 아니구나, 생각이 들면 우선은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싶은 거예요.
같은 맥락인데, 저는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체크리스트 만들어 하나하나 지워가면 살아가는 꿈같은 일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람이거든요. 작심삼일이 웬 말이에요. 작심 3분도 인심 쓰는 거예요.
그런 인간인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지키려고 노력하는데요.
딱 하나만 하자!
(하루 중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거기서 딱 하나만은 내가 정성을 다해 해내고 말자.)
오늘은 세탁소에 겨울 옷을 맡기자!
오늘은 대여한 책을 반납하고, 그 옆에 있는 동사무소 가서 쓰레종량제봉투를 반드시 수령해서 와야지.(다자녀라서 쓰레기 종량제봉투 무료로 받거든요^^)
오늘은 양말 서랍장을 열어, 짝을 잃은 양말이며 늘어난 양말 모두 버리고 말겠어.
오늘은 바닥 물청소! 딱 그것만이라고 만족스럽게 해치우자.
아이들 케어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딱 중요한 거 하나만은 내가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 하고, 나머지는 좀 풀어줘 버리는 건데.
오늘은 안전이 메인이다! (해지기 전에 무조건 집에 들어와!)
오늘은 영양공급! (오늘 저녁은 소고기다!)
오늘은 1단원 영어단어. 오늘은 뭐가 되었든 영어단어 테스트는 꼭 하고 만다.(일주일째 1단원 영어단어만 외우는 중)
그렇게 하루에 딱 하나만이라도 완벽하게 해결하는 거예요.
진짜 별일도 아닌데, 하루 종일 그 걸 해결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거예요.
해결하고 나면 생각보다 엄청 뿌듯해요.
해내고 나면 피곤해서 다시 쓰러져 뒹굴거리며 남은 하루를 날려 먹기도 하지만, 완전 의미 없는 하루는 아닌 게 되는 거니깐.
물론 그 하나도 제대로 못해서 자기 비하의 끝을 달리는 날도 있지만요ㅜㅠ
(그럼 오늘은 자기 전에 맥주 한 캔이다.)
정말 편하게 살죠?
네, 그래서 또 남편에게 미안해 지기도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함부로 쓰지 말라고.
그 돈 남편의 목숨값이라고.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고기반찬으로다가 아주 근사하게 차려내야겠어요.
그게 오늘 저의 우선순위로, 정성껏 해낼 미션입니다.
없는 솜씨 최대한 쥐어짜서 해볼게요.
오늘도 남은 하루 다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