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편두통에 관한 (진지한) 고찰

일상잡담

by 꿈꾸는 엄마



기분 나쁘게 쑤셔오는 왼쪽 편두통과 어깨 결림, 속쓰림 으로부터 3일만에 해방되었다.

새로 바꾼 편두통 약도 내성이 생긴 것같다.

3일만에 가벼워진 머리 덕분에 삶에 생기가 돋는다.

아프고 나면 잠시라도 건강한 삶에 이토록 감사할 수가 없다.

머리만 안아프면 뭐든 할 수 있을 것같단 과도한 자신감이 생긴다.


이 지긋 지긋한 편투동을 안고 산지도 20년은 더 되었다.

20대 초반, 직장 생활 중간 중간 견딜 수 없는 두통과 어지러움과 구토감으로 곤욕을 치룬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투통의 전조 증상이 오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눈알은 빠질 듯 저려오고, 뒷골은 팽팽하게 조여오며, 속이 부대껴온다.

당시 연인이었던 남편과의 데이트 중에 심한 울렁거림으로 골목 어스름한 곳으로 급하게 달려가 오바이트를 했던 적도 여러번이다.

어느 날은 예매한 영화를 취소하면서까지 데이트를 파토내고 반 죽음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한 번은 꾸역 꾸역 참으며 택시를 잡아 타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달리는 택시를 멈춰 세워 아무 거리에다 오바이트를 쏟아낸 적도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꽤나 심각한 편두통을 앓았음에도 병원을 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견뎌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고, 오히려 빈도수는 잦아졌고 길어졌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통의 전조 증상을 기민하게 알아 차리고 미리 약을 복용한다는 것이다.

다행이 지금은 사회생활을 하지 않으니 아프면 그대로 드러 누우면 될 일이다.


20년 가까이 앓아 오면서도 여전히 큰 병 없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생명에 지장을 줄 만큼 중대한 병의 원인은 아닐거라 짐작해본다.

하지만 이제와 궁금해진다. 왜 나는 이토록 오랫동안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그 동안의 축척된 데이터를 정리해 보자면, 편두통이 오는 경우는 이렇다.

추위에 떨거나, 더위에 지치거나.

잠이 부족하거나, 너무 오래 자거나.

허기가 지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자극적인 향을 맡았을 때.

신경이 곧두섰을 때.


아!

적당한 그 선을 과감하게 넘기고야 마는 순간.

그 순간, 나는 편투통에 시달렸구나.

적당함. 다시 말해 그 중간이라는 것을 유지하지 못했을 때

어깨가 결리고 뒷골이 땡기면서 눈 알은 빠질 것같고, 속이 뒤집어지고, 머리는 깨질 것같았던구나.

때되면 적당히 먹고, 때되면 알맞게 자고, 적당히 무심한 마음으로 적절한 온도 밑에서 생활하는 그런 삶.

태생이 귀한 몸이었구나.

나의 온 몸이 중용의 센서가 달려 예민하게 그 길을 인도하고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나란 존재에 대한 특별함이 느껴져 그 동안의 고생이 조금은 위로 받는 것같다.


철저한 통제와 중용의 길이 편두통을 다스리는 방법이라면, 글쎄 나는 이 병으로도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천성이 게으리고 고통에 둔감하며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어버리는 인간이라.

대신 다양한 편두통 약을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 놓고, 더욱 기민하게 신호를 알아차려 미리 통제하는 쪽으로 애를 쓰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적으로 이어질 염려가 있다면 그건 좀 다른 문제다.

둘째가 요즘 자주 머리가 아프다는데... 아이쿠, 날 닮아 그러려나.

어느 병원으로 가서 원인을 찾아 봐야 하려나.

타일레놀 한 알과 따뜻한 보리차를 들고 둘째 아이 앞에서 울상이 되어 죄인마냥 서 있는 나.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나 머리 아프다고 하면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던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