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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즐거움 그리고 고마움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평론집. 문학동네. 2008.

by 묻는 사람 K

" 샘들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ㅎㅎㅎ 오늘 저녁에 불꽃 축제 가신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오늘 21페이지를 더해 162까지 도착했어요. 배수아 작가와 그 작품이 나오는 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평소보다 오래 걸린 것 같네요. 그럼 즐거운 토요일 저녁 되시고 몰락의 에티카 완독도 파이팅입니다.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후 우리는 신형철 평론가 팬이 되었고, 저자의 다른 책을 각자 찾아 읽고 나누면서 '찐팬'으로 거듭났다. 올해 독서모임에서는 1년 동안 읽을 도서를 미리 정해두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그래도" 모임이 십 년을 넘겼으니 여러 이유로 읽기 미뤘던 책을 작정하고 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정해진 책 중 한 권이 <<몰락의 에티카>>이다. 팬이라고 자처했지만, 이후에 나온 서적과 달리 쉬이 잡게 되는 책이 아니었다. 모임 사람 중 단 한 명 만이 완독에 이르렀고 나 또한 흥미 있는 부분만 골라 읽고 책장에 꽂아두었던 터였다.


호스트가 되고 나면 자신이 처한 상황뿐 아니라 회원 개개인의 사정을 살피게 된다. 인간사 그러하듯 밥벌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바쁜 일은 언제나 생겼다. 이직을 했다든가, 전시나 출판을 앞두고 있다든가, 집안에 대소사가 있다든가, 번아웃 상태라든가, 이별 후유증을 겪는 등 함께 지내온 만큼 그들이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대부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모두가 좋아할 만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데에 가능한 실패가 없도록 신중한(?) 선택을 하곤 했다. 하니, 올해는 눈치 보지 말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모비딕>>과 고민하다 결국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골랐다. 이름과 내용은 익숙하지만 다수가 읽지 않았는 점, 소설이니까 상권의 앞부분만 잘 넘긴다면 이후부터는 술술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서였다. 상. 하 두 권이라는 점 때문에 순서가 뒤로 몇 번 밀려나긴 했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물론 모두 완독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 모임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함께 읽고 나누고, 언젠가는 읽고 싶게 만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올해의 마지막 고비가 된 책은 신형철 평론가의 <<몰락의 에티가>>였다. 믿고 보는 저자라고 했지만 한편으로 찝찝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호기롭게 잡았지만 번번이 끝을 보지 못한 채 책장을 덮으며 좌절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호스트 L은 모임 날짜를 한참 앞둔 3주 전부터 매일 밤 '알리미 봇' 역할을 해주었다. 그의 성실함을 익히 모르지 않았으나, 매일 밤 울리는 알림은 하루라도 읽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했고 동시에 묘한 울림을 주었다. '당신을 버리고 가지 않겠어요!' 악산을 함께 올라가는 동지애랄까....


" 1페이지부터 정주행 중인 저는 방금 막 16페이지를 추가하여 178페이지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200대 진입이었는데, 중간에 딴짓하느라(오이디푸스 나오는, 소포클레스가 지은 테베 3부작 줄거리를 읽고 오느라) 실패하고 말았네요. ㅎㅎ 내일 꼭 200대에 진입하도록 해보겠습니다. "


침대 옆에 놓아둔 책에는 매일 밤 포스트잇이 늘어갔다. '오늘만 그냥 잘까'하는 유혹 또한 성실하게 찾아왔지만, '한 장만 읽자' 마음을 바꾸었다. 느슨함이 밴 생활 때문에 쉽지 않았지만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습관이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기를 쓰지 않아도, 대단하게 마음먹지 않아도 그냥 그 일을 하는 것, 그러다 보면 할만해지는 것 말이다. 책장을 넘기며, 분석 대상(작품, 작가)을 사랑하는 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이후 쓰인 저자 책에서의 부드러운 문장과 친밀한 낱말대신 덜 정제되고 날카롭고 때때로 날것의 표현이 많았지만, 그 이유를 핑계로 대며 책장을 덮곤 했지만, 요즘에야 내 이해력과 노력 부족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언론에서는 폭포처럼 기사를 쏟아냈다. 축하할 일이고, 놀랍고 기쁜 일이지만, 기사를 읽는 일은 곤욕스러웠다. 상금이 얼마인지, 과세인지 비과세인지, 사생활 어쩌고, 과거 친분을 과시하는 영상 정도는 차라리 애교로 넘길 수 있었다. 수상을 비난하는 자를 찾아내 인터뷰한 기사, 저속한 헤드라인, 광주 5.18과 제주 4.3을 차마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은 책 읽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쪽으로 우회했다. 보수 언론에서는 해리장애 혹은 자기 분열을 하듯 이전 논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선회했다.


문화부 기자는 어디로 갔나? 오랜 바람대로 고은 시인과 황석영 작가가 노벨상을 받았다면, 준비된 자료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기사를 썼을까? 그랬다면 이처럼 처참한 수준의 기사가 쏟아지지 않았을까? 오래전 신형철 평론가와 한강 작가의 인터뷰 영상이 알고리즘에 올라왔다. 영상을 재생하려다 생각했다. 24년 대한민국에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갖는 의미를 대중 언어로 풀어 갈 수 있는 이가 있는데, 왜 그에게 지면을 내주지 않을까?


권한 없고 능력 없는 이가 욕심은 많고, 해서는 안될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한 이들이 권력을 쥐고, 생각 없음을 쿨한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당당함과 무례함을 혼동하면서도 잘못된 걸 모르는 이들이 사회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론을 통해 변화를 읽고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이 너무 쉽게 피로감으로 바뀌고 만다. 의기소침해 있던 마음이 알리미 봇 덕분에 노글노글 해졌다. 느슨했던 마음은 몰락의 에티카 덕분에 자리를 찾아간다. 좋은 글을 함께 읽는 즐거움이 있어, 오늘을 버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 이제 모임 날이 딱 7일 남았네요. 혹시 아직 책을 못 펼친 샘이 계시다면, 내일부터 모임 전날까지 6일간 120페이지씩만 읽어도 완독이 가능합니다. 물론 한 챕터만 읽고 오셔도 혹은 책을 못 펼치고 오셔도 당연히 괜찮습니다만 알리미 봇이 의무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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