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성적이, 진로나 꿈이, 돈과 성취가 때로는 사랑이 절실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만이 전부였으므로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그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삶의 마디마다 바뀌었지만, 그것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절박했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할 수 없어 사그라지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절했던 무언가도 변하거나 시들해지거나 사라졌다. 지나간 자리엔 좌절, 실망, 슬픔, 분노, 허망, 괴로움, 의기소침, 무기력이 상흔으로 남았다.
실패와 좌절의 경험도 첫사랑의 아픔도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간만 한 약이 없다는 옛말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는가 보다.
'너 왜 전화 안 받아?' 아침부터 메시지를 보낸 건 오랜 친구였다. 출국하면서 로밍과 음성 통화도 차단해 두었더니, 통화가 안 되더라는 다른 친구 연락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집을 떠나올 수 있었던 건 다시 돌아갈 거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탈한 나를 기어이 찾는 친구처럼, 내가 돌아갔을 땐 모두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요즘 나에게는, 나를 포함한 주변의 '무탈'이 가장 중요하다. 특별함 없이,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는 것.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만큼 간절한 것이 없다.
오늘은 12월 29일이다. 일 년 전 오늘,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이 무안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한 사고가 있었다. 그날, 179명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