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 볼까 해서

by 묻는 사람 K

하고 싶은 건 없지만, 하기 싫은 건 있으니까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매사 그랬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지 않는 쪽을, 살까 말까 싶을 때는 안 사는 쪽을 택해왔다. 우스개 소리로 '나는 에너지를 최대한 안 쓰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라고 말했던 게 전부 농담만은 아니다.


나와 달리 호기심 많은 남편은 가만히 있으면 좀 쑤셔하는 쪽이다. 모르는 건 알아내야 하고, 알고 있는 것에도 의심을 품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다. 기왕이면 다양한 걸 하고 싶어 한다. 세상 궁금한 것도 많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할 때 몸살을 앓는 것과는 영 다르다.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별다른 고민 없이 발 가는 대로 이동하는 것이 휴가다. 그래서 매일 저녁 비슷한 거리를 걷고, 씨암 수끼나 야시장에서 약간씩 다른 종류의 음식 먹기를 즐긴다. 치앙마이 국립도서관을 가거나 치앙마이 대학 도서관을 가거나만 다를 뿐이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려나 떠올려봤다. 정보가 부족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게 생각나지 않았다. '그럼 To do list라도 있으려나?' 역시 다를 게 없었다. '그럼, 하기 싫은 걸 제외하는 쪽으로 해보자!'


생츄어리는 코끼리를 타고 노는 대신 먹이를 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윤리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보호 구역까지 들어가서 동물을 괴롭히긴 싫으니까 패스. 사람을 구경거리로 삼는 소수 민족 방문이 포함된 상품도 통과.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지워나가다 보니 쿠킹 클래스가 남았다.


남편은 '뭐라도 해볼까 한다.'는 한마디에 신이 나서 여러 업체를 비교 분석 했고 장단점을 알려주었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라 그런지 대형 업체 외에도 소규모 가정집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형태가 있었다. 나는 반나절 짜리 하나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둘을 포함해 노년의 두 커플, 친구 사이로 보이는 20대 두 명, 마다가스카르에서 온 중년여성, 스위스인 젊은 여성 이렇게 열명이었다. 알 수 없는 언어와 웃음소리가 뒤섞여 차 안은 활기가 넘쳤다. 일행 없이 온 사람들만 조용히 창밖을 보면서 이동했다.


잠깐 시장에 들렀다가 탑승한 이후부터는 남편이 대화에 합류했고 봇물이 터지듯 스위스 친구와 마다가스카르인을 대화에 끌어들였다. 쉴 틈 없이 이어진 대화는 요리하는 동안에도 그칠 줄 몰랐다. '저 사람, 말을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을까.....'


이유 없는 친절을 베푼 이에게 주려고 챙겨 온 열쇠고리는 함께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모두 소진되었다. 남편은 나이스 가이 등의 찬사를 받으며 내내 중심에 서있었다. 'We are the world'


나는 스프링롤, 새우가 들어간 똠양궁, 치킨 넣은 팟타이, 코코넛 밀크를 듬뿍 넣은 카레를 만들었다. 음식을 먹으면서 '역시 요리는 남이 해주는 게 맛있구나', 라든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요리 과정을 안 보는 거'구나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을 고르는 사이, 가정식 저녁 식사를 함께 준비하고 나눠 먹는 곳도 있다면서 링크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경험이 좋은지 나쁜지, 원하는지 별로였는지 조차도 소화하지 못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과정 속에 있는데, 남편은 이미 다른 단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전부는 아니라도, 대부분 내가 맞춰주고 있는 거라고 믿어왔다. 우리 가정의 평화는 나의 인내심으로 유지되는 거라고도 생각했었다. 요란스러운 쿠킹 클래스를 끝내고 골똘히 생각해 보니 여전히 갈길이 멀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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