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by 묻는 사람 K

직장생활 10년 차 되던 해였다. 쉼 없이 일했으므로 소요된 시간과 경험만큼 노련하다고 자평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뿌듯했고, 뭔가 잘 안된 것 같다고 느낄 때면 사적인 시간과 공간까지 찝찝함이 침범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오만이었다.


입원 치료를 권했던 A에게 '생각해 보겠다'는 말과 '섭섭하다'는 대답을 들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조용히 상담실을 나갔던 A는 돌변했다. 기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내가 '치료실 안에서 문을 잠근 채 욕을 했다고, 너무 두려워서 나갈 수조차 없었다고, 공포에 떨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터무니없는 말이었으니까. A의 분노와 서운함이 가라앉으면 모든 게 해결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큰 오산이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졌다. 진실이 아니었으므로 사그라들 거라던 예상은 빗나갔다. 상황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A는 내가 소속된 학회마다 내가 얼마나 비윤리적이며 무능력한 사람인지를 증명하는 투서를 보냈다. 석사 지도교수를 찾아 이메일을 보냈고 징계와 자격 박탈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개인정보가 그렇게 쉽게 털릴 수 있음에 놀랄 겨를도 없이 나는 난도질되고 있었다.


추진력과 정보력만큼 대단한 인맥 때문이었는지, 내 휴대폰과 직장에는 알 수 없는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으므로,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무엇보다 이 상황을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연락을 피하자, 소문은 확신을 거쳐 사실이 되었다.


게시판이 폐쇄되기 직전까지 나를 파렴치한으로 몰아붙였다. 나를 낳은 부모가 대신 죗값을 치러야 한다거나, (있지도 않은 ) 내 자식이 불쌍하다는 말도 댓글로 달렸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비윤리적인 직원을 자르지 않는다며 기관 운영진에게도 가차 없이 공격이 가해졌다.


공개 해명과 사과, 정신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9장 남짓한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그 글 속 묘사된 나는 최악의 쓰레기였다. 반복해서 읽었다. '혹시 무심결에 욕설이 나왔나?' 의심이 들었다. 어떤 때에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 화가 났다. 그런 이들이 생각보다 많음에 놀랐고 슬펐다. A는 나보다 체격이 두 배쯤은 컸고, 목소리도 우렁찼으며 함께 있던 공간은 그녀를 가둬둘 만한 환경 조건이 허락되지 않는 구조였다. 내겐 비속어를 쓰는 언어습관 역시 없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럭 겁이 났다. 가족이 알게 되면 어쩌나.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부도덕한 자식을 키웠다는 오명을 부모님께서 알게 되실까 봐 무서웠다. A 주장처럼 욕하며 모욕을 주진 않았더라도,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나?' 혼란스러웠다. 나에 대한 신념과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A는 지치지 않고 몰아세웠다. 나를 찾는 클라이언트에게 '당신이 만나고 있는 인간이 얼마나 비도덕적이며 위선적인지, 폭력적이며 위험한 인물인지' 수시로 출몰해서 상기시켜주었다. 그럴수록 A의 주장에 흔들린 건 나였다. '그래, 나는 정말 도덕적인 인간일까? 확신할 수 있나? '


A가 교회에 기괴한 소문을 퍼트려 전도사를 쫓아내고, 선배 카드를 훔쳐서 사용한 일이 탄로 나면서 보호자가 입원 치료를 약속했다. 몇 달간의 사건은 허무할 만큼 싱겁게 일단락되었다.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한 채 누더기가 된 나만 남았다. A 주장에 열광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던 사람들, 그 누구도 내가 견딘 시간과 겪은 고통에 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녀가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지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시 또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도리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생긴 거라고 여길뿐이다. 10년 전 상처는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무뎌졌다. 그 고단한 사건을 겪은 후 신뢰와 믿음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제자의 무능과 부도덕함에 대해 들으셨던 교수님께서는 일체 그 일의 진위를 묻지 않으셨다. 동기 몇몇은 소속 학회에 대신 소명해주었다. 동료들은 아무 일 없듯 나를 대했다. 누구 하나 '네가 진짜 욕한 건 아니지?라고 넌지시라도 묻지 않았다. 소송에 대비해 탄원서를 모으자던 동호회 사람도 오래된 친구들도 아무도 내게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하는 우스운 상황에서 그들은 웃지 않고 기꺼이 일해 주었다.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나는,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관계부터 따지고 들어갔을 테고, 그 이후에야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을 거다. 어쩌면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너도 모르게 실수한 거 아니야?'


덮어두고 믿어준 그들 덕분에 나는 이십 년째 같은 일을 같은 장소에서 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끔 나 자신을, 확신을, 신념을, 마음을 의심해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쓰지 않았던 비속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자기 원칙과 경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걸 징글징글한 경험으로 배웠다. 예상치 못한 일은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만일 당신에게 일어난다면, 그때는 나도 묻지 않고 적극적으로 믿어 줄 테다. 그들이 가르쳐준 그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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