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허무는 일

by 묻는 사람 K

어릴 적 엄마와 시장에 가던 길에 같은 반 아이를 만났더랬다. 학교 선생님이셨던 어머니는 나보다 아이를 먼저 알아보셨고, '너랑 같은 반 친구네'라고 하셨다. 나는 재빠르게 '그냥 같은 반 애일뿐이야'라고 답했다.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성 떨어지는 행동'임에는 틀림없었던 것 같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최소한 분위기를 쏴~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기술은 생긴 듯하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친구'라는 범위에 함부로 '친구가 아닌 이'를 포함하지 않는 편이다. '동기, 동창, 동료, 아는 사람' 그렇게 소속을 만들고 분류한다.


'잘 알아요.'라든가 '친하다. 가깝다.'라는 표현도 거의 쓰지 않는다. 진심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친한 사람은 소수니까. 그리고 그들을 이야기할 때에는 굳이 그런 낱말을 가져다 쓰지 않아도 누구나가 아니까 그렇다. "두루두루 폭넓게 좀 사귀라"라고 '친 사회적'인 큰언니는 말했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친밀한 것처럼 말할 때, 내 안에서 발생하는 충돌이 싫었다.


사람에게뿐 아니라, 책을 고르고 구분하는 일도 비슷하다. 한번 좋아하게 된 작가 혹은 책은 평과 내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냥 좋다. 덜 좋은 건 있어도 싫은 건 없다. 당장 읽을 여력이 안되더라도 미리 사두었고, 신간 알림을 수시로 확인한다. 지극히 감정적이고 사소한 방식으로 친밀함을 드러낸다.


독서 모임에서 최근 화제가 되는 작가의 책을 함께 읽고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평이 좋았고, 반응도 뜨거웠다. 한 작가의 책이 두 번 선정되는 일이 자주 있진 않았음에도 인기 있는 작가라 그러했는지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모임 내내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오갔다.


전작보다 밀도 있고, 문장도 한결 세련되었으며, 소재도 흥미로웠다. 어릴 때부터 글감 수집을 했었다는 소설가답게 성실한 자료 조사가 내용을 탄탄하고 매력 있게 해 주었다. 이런 '젊은 글쟁이'가 있다는 게 좋았다. 작가의 말에서 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딱 거기까지였다.


이번 책은 '모두가 괜찮다고, 좋은 사람이라고 평하는' 사람을 닮았다. 그런 의미에서 만남은 즐거웠으나,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생기지 않는 한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내게도 좋은 사람일 순 없고, 모두 괜찮다고 해도 내가 괜찮은 건 아니며, 괜찮고 좋은 사람과 반드시 친해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마음 열고 경계를 허무는 일이 어려운 건, 한번 애정을 주면 거둬들이기 쉽지 않아서일 거로 생각했다. 앞으로 살면서 풀어야 할 과제이며, 언젠간 물렁물렁해질 거라고 기대도 했다. 모임 속에서 내 탄탄한 경계를 다시 확인하고 보니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뿌리도 깊은 것 같다. 성큼성큼 꼰대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나를 본다.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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