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불행해지는 거야."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말을, 기어이 남편이 뱉어 버렸다.
"이대로 가면, 모두 엄마를 미워하게 돼. 내가 아니면 결정할 사람이 없어."
오랜 시간 되풀이해서 연습했던 것처럼 담담하고 건조하게 그는 말했다.
칠십 평생 남에게 싫은 소리 제대로 안 해보셨던 어머니 입에서 기괴한 욕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면,
모두 잠든 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문단속만 잘했더라면,
설사를 반복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자꾸 찾지 않으셨다면,
집 잃는 일만 없었더라면,
밤에 잠을 좀 주무셨다면,
'데이 케어 센터'에서 할머니를 넘어 뜨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센터에서 더는 맡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괜찮았을까....
소소한 문제가 생기고, 더러는 큰일이 터지고,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일이 종종 생겼어도,
우리 모두, 진행이 더딘 거라고 위로했다. 우리만 괜찮다고 하면 상관없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무 문제없다고.
야근 중이던 내게 남편이 진주로 내려간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늦은 밤, 집 앞에서 만난 그는, 다행히 경찰 도움으로 몇 시간 만에 찾았노라고, 그래서 그냥 돌아왔노라고 했다. 그러고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김밥이 넘어가더라...."버스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구부정하게 앉아 허기를 채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당황했을 때 나오는 특유 행동과 표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김밥 따위로 채워질 허기가 아니었으므로, 가슴이 시렸다.
"지금처럼만 얌전하셔도 같이 살 수 있는데..."라고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은 딸이 말했다.
"우리 엄마가 어디서 이런 욕은 다 배웠을꼬"라며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사춘기 조카는 "냉정하고 매정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나는 그 원망이 우리 모두를 향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요양원에 가면, 우리보다 훨씬 잘 봐줄 거야. " 남편이 말했다.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남겨둔 채 돌아서 나오던 날을 나는 꿈에서 몇 번 반복했다. 참았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나를 자책했고, 책망했다. 그때 나는 울지 말았어야 했다. 그도 아팠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무척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참았을 시간에 관해 생각한다.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생길 테니 어른이 되고 싶었다. 성인이 되면 하기 싫은 일도 나서서 해야 된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처서가 지났음에도 무더운 여름. 생일을 기념하며 그가 좋아하는 고기를 먹었다. 남편이 슬프지 않게 온전히 먹는 일에만 집중하길 바랐다. 어머니를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일 년 전 여름의 어머니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나는 조금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자꾸만 던졌다. 그가 말했다.
"8월 23일이 엄마가 요양원 간지 1년 되는 날이야. "
우리는 말없이 고기를 먹었다. 후덥지근하고 끈끈한 여름이 좀 더 더워져도 괜찮을 것 같은 여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