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버스 안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지하철 내에서 소란을 피워 경찰이 출동했다는, 코로나 증상이 있음에도 검사받기를 며칠 째 미뤘다가 감염자 수를 키웠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헤드라인 조차 읽지 않고 뉴스를 끊은 지 한참 된 터니, 유사한 기사는 이전에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피로함이 몰려왔다.
마스크 안으로 땀이 고였다. 이마에서 흐르던 땀도 주르륵 흘러 들어갔다. 늦은 출근으로 지하철은 비교적 한산했지만, 선뜻 흐르는 땀을 닦지 못하겠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청년은 휴대폰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젖은 머리카락과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색 마스크를 보니 '울컥'했다. '그래, 당신도 나와 같군요.'
폐 끼치고 싶지 않은 거다. 혹시 모를 위험에 누구도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거다. 가끔 내가 거대한 바이러스 덩어리 같다는 상상을 한다. 통증을 지나치게 잘 참는 내가, 주 증상을 감지 못하고 있는 걸까 봐 수시로 겁이 났다. 기침이 나오면 소스라치게 놀라 열을 쟀다. 오늘 어디를 다녔고 누구를 만났더라? 며칠 간의 동선을 복귀하곤 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부모님을 뵙지 못한 지 석 달이 넘어간다. 영상 통화가 아니었다면 20년 넘은 소파를 바꾸신 것도 몰랐을 거였다. '다음 주에 초밥 사드린다'던 약속이 몇 달째 지켜지지 못했다. 다수를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사람 만나는 일이 조심스럽다. 가족보다 더 자주 만났던 친구들과도 반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 모임은 무기한 연기되거나 화상채팅으로 옮겨갔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멀리하게 된다. '다음에' '조만간' '확진자 수가 두 자리'가 되면, 이라면서 만남을 미뤘다. 적어도 당신에게만은 위험 확률을 올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상대도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서로가 '만나자' 말도 쉽게 못 한다. '다음에는 꼭'이라면서 말끝을 흐린다.
오랜만에 클릭한 뉴스 댓글에는 '누구는 놀러 갈 줄 모르냐, 요즘 같을 때 꼭 그래야 하나, 구상권 청구해라'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다. 그러다, 생각했다. 흔한 일이라면 뉴스에 나왔겠나, 드물게 일어나니까 기사를 썼겠지.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래, 당신과 나 이렇게 애쓰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잘 참아가며 견디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또한 지나갈 테다.
내일부터 다시 화장을 해야겠다. 그래 봐야 기껏 선크림과 비비크림을 바르는 정도지만 말이다. 금방 끝날, 임시 상황을 핑계로 맨 얼굴로 대충 출근 한지 6개월째다. 얼굴을 반쯤 가리는 마스크가 있으니 편리했고 특수 상황이니까, 일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장기전에 돌입한 이상, 더는 핑계를 댈 수 없을 것 같다. 모든 게 멈춰도 시간마저 정지된 건 아니니까.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더 조심하면서, 한 층 더 몸을 낮추고, 생활을 단조롭게 해야 할 거다. 올 겨울도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필수품이 될 테지. 그래도 운이 좋으면 연말 모임은 온라인이 아닌 대면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우리 모두 애쓰고 있으니까. 나도 당신과 같은 마음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