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책을 되팔거나 기증하거나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탓에, 책장 빈 공간마다 가로로 눕힌 책이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찾는 게 어렵지 않았던 터라 그대로 두었다. 간소한 생활을 실천하는 주변 분들은 책도 예외 없이 몇 권 이상 두지 않고 정리한다고 하셨다. 멋있는 신념인 것 같아서 따라 해 보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책 외에는 쟁여놓는 것도 없는데'하며 스스로 타협했다. 그저 내 깜냥대로 살자, 마음 고쳐먹었다.
그러니까, 어젯밤 책장을 정리한 건 결코 단출한 삶을 위한 '신박한 정리'는 아니었다. 그저 더는 그것(책-좀 더 구체적으로는 저자)과 공간을 공유하고 싶지 않은 서툰 감정에서였다. 마음에서 멀어졌으나 외면해왔던, 이러다 해를 넘길 수도 있겠다 싶어서였을 뿐이다. 며칠 전부터 눈으로 '이것', '저것', '여기서 여기까지' 하면서 솎아낼 책에 눈도장을 찍었다. 빈 공간에 공허함이 생기면 어쩌나 싶었지만 손이 머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예상보다 많은 책이 현관 앞에 쌓였다.
공허함은커녕, 시원 섭섭할 줄 알았는데, 후련함만 남았다. 시간을 두고 충분히 정을 떼어서였던 모양이다. '안녕이다!' 누군가는 읽고 싶은 책일 수도 있겠고, 헌책방에 내다 팔면 여러 권의 새 책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로의 바닥을 다 본 오랜 연인과의 이별을 닮았달까, 헤어진 후에도 옛 애인의 행복을 빌어주지도 못하는 속 좁고 복잡한 마음이었달까.... 낑낑거린 채 세 번을 오가며 재활용 폐지 쌓아두는 곳에 가져다 버렸다. '잘 가라!'
이십 대와 삼십 대를 함께 했었다. 한 때는 내게 위안이었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였고, 무지한 분야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던 선생님이었다. 화두를 줄 때도 답을 주기도 했다. 심심할 때 놀아주고 사람들 앞에서 뽐내게도 해주었으니, 보통 사이는 아니었던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는 것쯤은 진작부터 알았으므로 기대 또한 없었지만, 적어도 당신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바람을 품었더랬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는 '폐지'옆에 나란히 놓였다.
연기자라면 개인의 사람됨보다는 연기력이, 가수에게는 시시콜콜한 사생활보다 가창력이, 작가라면 결과물인 책이 내 호불호의 판단 기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그런 분별력과 판단력이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사람 본질'을 신뢰하는 쪽이다. '사람'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말의 힘은 내용보다 발화자의 호감도가 상당 부분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어떤 내용인가 보다 누가 그 말을 했느냐가, 무슨 말인가 보다 누구의 이야기인가가 중요하다.
미성숙한 기준이란 걸 알지만, 어지간히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자꾸 사람에 기대하고 희망을 품는다. 사는 동안 똑똑한 지식을 발휘하기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꿈꾸는 이유도 '사람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상처 받은 마음이 책장을 비워내는 행위로 금방 치유되진 않겠으나, 더는 당신 이야기에 관심 두는 일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책 뭉치를 들고 계단을 내려가며, '나이 들고 상황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하겠지만, 최소의 분별력은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변하겠지만 시시해질지언정 추해지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존엄을 훼손하지 않고 살 다 갈 수 있기를 꿈꾼다.
잘 가라, 그때로 충분했던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