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불편한 친절

by 묻는 사람 K

자주 주문하던 커피집 원두가 정오가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빠르면 이틀 만에 늦어도 사흘 안에는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와 달리 나흘째인 수요일까지도 소식이 없었다. 신선한 커피로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꺾이고 나니 커피 향이 더욱 절실해졌다.


'급한 대로 근처에서 조금 사야겠어', 다소 짜증스러운 내 반응에, 남편은 "추석이 다가와서 물량이 쏟아지나 보다, 정신없이 다니겠구먼"이라며 혼잣말인 듯 내뱉었다. '집 앞에 와있는 택배를 마치 마술처럼 생각했다. 그 마법을 위해 누군가의 손과 발이 쉼 없이 움직였다는 걸 나는 자꾸 잊는다.


가능하면 거로운 쪽을 택하자고 말한 건 남편이었다. 나이 들수록 손해 안 보려고 아등거리지 말자고 한 것도 그였다. 결혼 초기에 이 문제를 두고 사소한 다툼을 벌이곤 했다. 나는, 그가 '자기 밥그릇을 못 챙기는, 게으른 호갱'이라고 생각했다. 손해를 보는 건 바보짓이므로, 귀찮아도 권리를 챙겨야 현명한 소비자라고 믿고 있었다.


요즘의 나는, 번거롭고 손해 보는 쪽을 택한 남자와 살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느긋함이 좋고, 재능에도 없는 악착을 떨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생각하는 이라서 안심된다. 목적과 목표에 앞서 수단과 방법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이라며 안달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 급하면 품이 들더라도 직접 움직이면 될 일이다. 헐렁한 우리 부부에게는 하루 이틀 빠르거나 늦는 건 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이 안 되었음에 짜증 났을 뿐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 다며, 타인 행동에는 쉽게 흉을 보면서 정작 내 행동은 합리화 하기 일쑤다.


그런 남자와 살다 보니, 식당에서의 과도한 친절이 불편하고, '고객님, 커피 나오셨어요.'같은 파괴된 문법이 껄끄럽다. 나는 그냥 맛있는 밥이면 좋고, 커피는 다됐다고 알려주는 걸로 충분하다. 지불한 비용의 것만 취하고 싶다. 그리고 뭣보다 '갑'이나 '왕'이 되고 싶지 않다.


늦은 퇴근 후 집 문 앞에 놓인 커피 박스와 서점에서 온 책을 보았다. 누군가 마법처럼 다녀갔던 모양이라고 생각할 즈음 '딩동'하며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당일 배송 상품, 배송이 지연되고 있는 점 사과드립니다. 담당 기사 배송물량의 일시 증가로, 일부 배송 지연 중입니다. 아직 못 받으셨다면, 부득이 다음날 오전 중 배송해드립니다. 일정상 취소를 원하시면, 고객센터로 반품 신청해 주십시오. (반송비 알라딘 부담)>


나를 유일하게 VIP(플래티넘, 골드)로 대접해주는 서점에서 보내온 메시지였다. 이런 친절한 메시지(서점의 태도)는 내 선택에 조금도 영향 주지 않는다는 그들 알고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동네 책방과 알라딘 서점을 번갈아 애용할 테다... 그러니, '늦어도 괜찮아요.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나와 당신이 괜찮다면 마법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다니는 그도 괜찮을 거예요....'


내일 아침에는 싱싱한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반나절이나 일찍 행복해진다. 기다림은 간절함을 선물로 가져온다. 이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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