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어느새 9월! 그것도 중순이 지났다.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스스로 독려하고 미뤘던 일을 하나둘 처리하고 있지만,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생활의 많은 부분이 변했다. 약속은 무기한 미뤄지거나, 기약 없는 말로 남았다. 한 달마다 있던 가족 모임은 서로의 안전을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던 소소한 즐거움도 멈췄다.
공식 행사는 이미 온라인으로 바뀌었고, 사적인 모임 또한줌(Zoom), 듀오(Duo) 같은 화상 채팅 형식으로 서툴게 옮겨가고 있다. 드디어 기계치인 나도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쓰게 되었으니 나쁘지만은 않다.
노트북과 휴대전화 렌즈를 보며 이야기하는 게 어색하고, 가끔 화면 쪽으로 머리를 불쑥 들이밀어 상대를 놀라게도 하지만, 조금씩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피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야간 산책을 시작한 점도 올해 생긴 변화 중 하나다. 같은 장소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인한다. 익숙함 속에서 낯섦을 발견한다. 초저녁잠 많은 남편이 풍선처럼 부풀어가는 아내가 염려됐는지 선뜻 동행해준 덕분이다.
버티고개역에서 약수역으로 다시 청구역을 향해 찻길을 따라 걷는다. 어떤 날은 방향을 바꿔 한남동에서 이태원을 따라 돌기도 한다. 몽골, 인도, 이집트 대사관이 늘어선 길도 운치 있다. 장충동 공원과 국립극장을 가고, 남산 산책로를 뛴다.매일 밤 여행 가는 마음으로 경로를 정한다.
밤에 보는 마을은 아름답고 신비롭다. 생각만큼 정겹고 기대보다 화려하며 놀랄 만큼 요란하다. 혼자 보기 아까울 때면 주저하지 않고밤을 수집한다. 눈으로 본 만큼은 못 하지만, 이때의 감동을 잊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새침하게 시치미 뚝 뗀 서울을 만나겠지. 이렇게 밤과 낮을 오롯이 다 느낄 수 있으니 좋다. 오늘 밤에는 조금 더 멀리 걷기로 했다. 가을밤 바람은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므로....
(혼자 하는 야간 산행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절대 그러지 마세요. 세상의 어떤 아름다움도 안전보다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