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때 말한 다음이 오늘이야?" "아휴, 그걸 여태 생각하고 있었어? 얘는 하여간...."
그러니까, 나는 좀 피곤한 아이였(을 것 같)다. 그냥 흘려듣지 못했고, 기어이 기억해내곤 했으니까 말이다. 전반적인 인지 기능이 고르게 발달했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여러 '기억 기능' 중 유독 일화 기억, 그러니까 '에피소드 메모리'만 반짝반짝했다. 바꿔 말하면 '뒤끝'있는 사람이었던 거다.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이라며 수줍게 인사해 오던 청년은 십 년 전쯤에 내게 수업을 들었노라고 조심스럽게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그가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꼬아 잡아 뜯는 버릇이 있다는 것도 회상해냈다. 오래전 만났던 내담자도 몇 가지 인출 단서만 주어지면, 그가 어떤 핵심 문제로 무슨 갈등을 겪었는지 정도는 파일을 열어 보지 않아도 추론해 낼 수 있다. (실제로도 4-5년 혹은 훨씬 오래전에 만났던 이들이 종종 찾아오곤 한다.)
기억하는 사람은 억울할 때가 많다. 자칫 잘못하면 성격 되게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 일쑤다. 그뿐 아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속초 그 집 물회 생각이 요즘 참 많이 나더라'고 하셨던 말씀을, 어린 조카와 양화대교를 건너다 들은 '이모랑 저 오리배를 타고 싶어.'라던 속삭임을, 지금은 세상에 없는 친구가 '인사동 뒷골목에서 막걸리 한잔하자.'라고 했던 말을 숙제처럼 품고 산다. 과제를 끝내기 전까지 늘 마음 쓰일 걸 안다.
쿨한 척한다고 본성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고 말한다고 천성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나이와 함께 많은 기능이 쇠퇴해지고 기억력도 예전만 못하지만, 요즘은 그냥 재능이려니 하며 받아들인다. 기억하는 사람의 불편은 숙명이므로 당당하게 마음껏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자고 스스로 격려한다. 뒤끝 있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 그날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