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by 묻는 사람 K

충혈된 눈과 의 경련에서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으므로 조용히 바라보았다. 원망, 분노, 짜증과 배신감 뒤범벅된 채 날것의 감정이 쏟아졌다. 넋두리와 불만 사이를 오가더니 이내 격양된 모습으로 쏘아붙였다. "당신 자식 아니니까 쉽게 말하는데....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시긴 줄 알아?..."


한 달 전 고등학교를 자퇴한 아이는 '다시 시작할 거'라고 했다. 잘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늦었더라고, 다른 방법은 없더라고 말했다. 부모님은 언제나 의견을 존중해 주셨으므로 자퇴 의사를 밝혔을 때도 놀라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빠르고 쉽게 끝났다고 했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 누군가는 이름을 바꾼다.

더러는 SNS 계정을 삭제하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학업을 중단하기도 한다. 낯선 곳으로 떠나거나, 물건을 버리고 머리카락을 잘라낸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죽고 싶은 마음을 품기도 하고, 살고 싶어서 몸에 상처를 낸다.

아이 결정도 하나의 선택일 거로 생각했다.


학교를 그만두기 전, 부모와의 갈등 또는 선택을 위해 상담실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모녀는 이미 결심을 굳힌 뒤였다. 결정내린 뒤에 평온과 안도감을 찾는 많은 이들과 달리 아이는 피로와 불안에 압도된 모습이었다.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는 어머니 역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선 모습이었다.


"실패한 인생을 다시 돌릴 수 있을까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아이가 울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시간이 생기면, 밀린 공부를 하고 그동안 못했던 운동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도무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 했다. 약속, 그러니까 제대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한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괴롭다고 말했다.


"내가 자격이 있을까요?....

밥은 먹어도 될까, 음악은 들어도 될까, 내년에는 잘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네 자식 아니니까'고 악쓰던 그녀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이 입안 가득 맴돌았다.


"만약 내 자식이라면, 열일곱 밖에 안 된 애가 인생 망했다고 좌절하는 걸 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자해흔으로 구석구석이 코끼리 피부처럼 굳어질 때까지 두지 않을 겁니다.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고 또다시 상처 내도록 두지 않았을 거라고요. 몇 시간씩 걸어도 힘들지 않고,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 채로 헤매고 다니지 않게 할 겁니다. 차리리 피곤해서 다행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을 거라고요."


"당신! 몇 년만 참으면, 보다 나은 미래가 열린다는 거짓말로 아이를 홀리고 있잖아요. 공부만 잘하면 성공한다고 속이고 있다고요. 어느 학원이 좋은지 정보를 물어다 주기보다, 공부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요. 그러니까, 내가 부모라면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아이를 향해 '배신감 느낀다, 꼴도 보기 싫다. 어쩌다 저런 게 태어났느냐'는 말, 하진 않을 겁니다."


살면서 힘든 일 피할 수 없겠지만, 그게 실패라고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실패가 쌓이면서 삶을 만드는 거라고, 그게 나쁘기만 한 게 아니더라고 알려주세요. 매력적인 사람은 실패를 먹고 성장하는 거라고 그러니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해 주라고요. 왜 힘든 걸 말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는 대신 혼자 고민하게 둬서 미안했다고, 지금이라도 알려줘서 고맙다고 해 주라고요.

'니 자식 아니니까'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내 자식 아니라서 그 정도밖에 말해줄 수 없었던 겁니다!!!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이 온종일 독기를 품고 머릿속을 누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실패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다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아이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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