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을 거다.

by 묻는 사람 K

무서웠던 건 눈에 보이지 않아서였다. 확진자 숫자로만 파악되는 '적'의 실체는 수시로 불안에 떨게 했다. 게다가 '무증상 감염자'에 관한 뉴스는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했다. '혹시 내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전염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넘어 무기력감으로 내려앉았다.


어찌 견뎠나 싶을 만큼 기특한 20년이었다. 주변에 개인 사업자나 자영업자가 많은 터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난 자리는 처참했고 잔인했다. 노동 시간에 따라 급여가 달라지는 나 역시도 타격을 피할 길 없었으나, 모두가 겪는 고통 앞에서 입을 뗄 수 없었다.


인도 벵갈루루에서 생업 중이던 시동생은 일 년 가까이 오도 가도 못한 채 한국에 머물고 있다. (한두 달이겠거니 하며 초조한 시간을 낚시로 달래더니, 이제 거 어부 됐다.) 다중 체육 시설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아쿠아로빅 수업을 했던 큰 언니도 1년 넘게 일하지 못했다.


미술학원을 운영 중인 경순이는 매일 체온계와 손 소독제를 들고 다니며 살얼음 위를 걷듯 일상을 보낸다. 입시생 아들을 둔 친구는 가족 모두 '셀프 자가격리' 상태로 몇 달을 지낸다고 했다. 논술 학원을 하던 지혜 씨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폐업했고, 손뜨개 공방을 하는 주희 씨도 수강생이 현저하게 줄었다고 이야기했다.


자식과 손주 보는 게 유일한 낙인 아버지조차 반년 넘게 가족 모임을 적극 반대하셨고, 생신 날에도 아침부터 전화하셔서는 아무도 오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니는 일 년 넘게 뵙지 못했고, 아내 없이 팔순을 맞은 시아버지께서는 장남과 며느리가 빠진 채 집밥으로 조촐하게 보내셨단다.


그럼에도 조금씩 적응해 간다. 팔순 어머니는 스마트 폰으로 노인학교 수업을 들으신다. 주희 씨는 온라인 강의와 유튜브 영상을 제작하고, 기계치인 나 역시 실시간 화상 프로그램을 더듬더듬 배워가며 수업을 진행했다. 전화 통화도 질색하던 친구와는 온라인 모임을 하며 서로의 근황을 묻고 사정을 전한다.


산타할아버지도 2주 격리였다며, 1월 9일 늦은 크리스마스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흰색 고무신 사진과 함께 백신을 확보했다는 설 축하 연락도 제법 많이 왔다. 줄지어 만들어 놓은 눈사람 사진이 단체 카톡방에 올라오자, '방역지침 위반! 마스크도 안 쓰고 모여 있으면 안 된다.'는 싱거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모두 깔깔대고 웃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재치와 유머를 잃지 않고, 적응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보면서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확신한다. 그들을 보면서 불안과 공포를 녹여낸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 이길 때까지 서로의 러닝메이트가 되어주고 있는 거다.


그런데,


며칠 전, 방역 방해 혐의로 구속된 신천지 교회 총회장의 감염병 예방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판결 났다. (수원지법 형사 11부. 김미경 부장판사), 신천지 교회가 방역 당국에 시설과 신도 명단을 축소 제출한 것이 방역 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작년 2월 대구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에 대한 결과다.


그보다 앞서서는 20년 8월 15일, 당국의 지시를 무시한 채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정부 규탄 대국민 시위를 벌이고, 확진 판정을 받은 전광훈 목사가 풀려났다. (서울 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 허선아 부장판사 ) 코로나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등 가짜 뉴스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으나, 법원에서는 모두 면죄부를 주었다.

재판 결과는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파급 효과가 매우 크다. 앞으로 방역 지침을 어겨도 방역 당국에서는 강제할 수 있는 게 상당히 제한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만 싸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맥이 풀렸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지치지 않을 거다. 나는, 평범한 '우리'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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