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망

by 묻는 사람 K

새해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우리 가현이의 바람은 '가난한 나라에도 골고루, 공평하게 백신이 나눠지는 거'라고 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고 친구들이랑 밖에서 놀고 싶다고도 했고, 방탄 소년단 스탠드 굿즈를 가지고 싶다는 간절함도 품고 있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몇 년째 미루고 있는 소논문을 마무리 짓고, 해외 영업하는 남편 일이 잘 풀리길,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동생이 고비를 잘 견뎌냈으면 좋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원을 가졌던 나는, 가현이의 '골고루, 공평하게'라는 말 때문에 부끄러워졌다.


엄마 마음이 바뀌어서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되길 바란다는 여섯 살 율하, 돈 걱정 없이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세연 선배, 결혼은 아니어도 연애라도 하고 싶다는 지수 씨, 우도 여행을 꼭 가보 싶다던 정수, 봄에 이사할 수 있도록 사는 집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준섭 씨 소망도 들었다.


연초에는 이런저런 새해 소망과 계획을 나누는 일이 자주 있다. '듣고 말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서로의 바람을 응원하는 일이 나는 참 좋다. 상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점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기사 쓰는 기자들이 좋아하는 S교수의 새해 소망은 "누군가 졸땅 망했으면 좋겠다"는 거라고 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학생을 가르치는 분이 다수를 향해 '한 개인을 향한 저주'를 새해 바람이라고 말하다니. 자신의 언어가 어떻게 퍼져가고, 심지어 기사화된다는 것쯤은 많은 경험으로 알고 계실 분이...


눈을 의심했다. 한동안 포털 사이트 접속 시간을 줄였더랬는데, 참지 못하고 클릭 버튼 누른 것을 후회했다. 우리 가현이가 이 뉴스를 보지 않았으면 한다. 내 바람은, 살면서 흑역사를 덜 만들 수 있는 분별력과 지혜를 갖추고,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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