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

by 묻는 사람 K

씩씩한 수영이는 여고 시절에도, 대학을 다닐 때도, 취업 준비 기간에도, 직장 생활을 할 때도,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도 한결같다. 간혹 몸살에 코를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맡은 일을 미루거나 주변에 치대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여전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크게 바뀔 것 같지 않다.


내 결혼식 날, 부은 얼굴을 목도리로 칭칭 감은 채 나타났던 친구는 급체로 밤새 앓았다고 했다. 그날의 모습을 떠올리면 고마움보다 안쓰러움이 앞선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이라는 걸 우리 둘 다 모르지 않을 텐데, 그 몸으로 먼길을 왔다는 게 내내 마음에 걸린다.


가끔 그 친구 인생에도 거쳐 얻는 게, 쉽게 쥐어지는 게, 염치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성실하고 유쾌하고 매사 노력하는 모습이 부럽다. 닮을 수 없다면, 흉내라도 내고 싶은 친구지만, 때때로 그 씩씩함이 나는 좀 슬프다.


친구가 근종 수술을 앞두고 있다기에, 내가 좋아하는 돼지 국밥을 택배로 보냈다. '수술 전엔 무조건 잘 먹고 기운 내야 된대',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며칠 후, 조각 케이크와 커피 쿠폰이 도착했다. 뭘 하나 그냥 받는 법이 없어서 나는 또 조금 슬퍼졌다.


운이 좋은 덕에, 관계에 소극적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친구가 많다. 수시로 도움을 받다 보니 환산할 수 없는 빚이 차곡차곡 쌓였다. 수영이, 상희, 현주, 성주, 동희, 경순이, 주영이, 현정이, 은미, 승환이, 승영 언니, 은경 언니, 순희 언니, 지영 언니에게도 내가 좋은 친구일지는 알 수 없다.


주희 언니가 말했다. "내 나이가 되면, 좋은 친구 나쁜 친구가 없어. 살아있으면 좋은 친구야." 우리는 언덕길을 내려오며 한참 동안 웃었다. 그 말이 좋았다. 안심도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나는 아주 오래 살 거야. 그래서 좋은 친구가 될 거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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