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렇게 시작되었다.

by 묻는 사람 K

"양성이래, 자기! 빨리 검사받아. 가까운 곳으로 빨리 가!"


남편이 약간의 미열을 동반한 근육통을 호소한 건 이틀 전 저녁이었다. 늦은 퇴근 후 집으로 가니, 몸이 무겁다고 했다. 늘 하던 농담처럼 '코로나 아니야? 걸리면 진상되는 거야, 알지? 내일 아침 일찍 검사부터 하고 감기약 처방받아.'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날 밤, 머리만 닿으면 업어가도 모를 만큼 잘 자던 남편이 밤새워 뒤척였다. 새벽이 다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드라이브 스루 선별 진료소를 찾는 남편을 뒤로하고 서둘러 출근길에 올랐다. '에이 무슨 일이야 있겠어.' 워낙 예민한 편이고, 요 며칠 신경 쓸 일이 많았기 때문일 거로만 생각했다. 남편은 작년부터 줄곧 재택근무였다. 모임은커녕 나와 함께 산책하는 것, 아침 조깅 외에는 외출도 거의 없었다. 게다가 지나칠 만큼 철저한

위생 관념이 있는 이였다.


다섯 시가 되어갈 무렵 메시지가 연거푸 왔다. 한창 일할 시간이었음에도 조짐이 이상해 전화기를 확인했다. 조기 퇴근을 하면서, 내 방 근처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검사소를 향해 뛰었다.


"검사 이후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데, 귀가할 방법 있으세요?"

"에? 아니요... 하지만, 집 근처로 가기엔 너무 늦었는걸요."

"일단 그리로 가세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집으로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될까요? 차를 가져오지 않았어요."

"검사받기 전이니까, 그냥 가세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남편이 양성이라면, 직업적 고위험군인 내게서 옮았을 가능성이 크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고, 좁은 집에서 밀접 접촉자인 내가 피할 방법은 없었을 게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내가 누굴 만났지? 일단 걷자. 가는 데까지 가보자.' 현재 위치에서 집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 소요 시간을 검색했다. 도보로 3시간 24분. 아....


남편은 방문을 닫은 채 역학 조사를 위한 파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가능한 촘촘한 추적을 위해 카드 사용 명세와 우리 기억력을 동원해서 동선을 정리했다. 방과 거실에 각각 앉아 노트북을 켰다. 며칠 간의 일을

복기해 나갔다. 잠복기와 증상 발현 시점을 두고 티격태격했다. 다툴 기운이 있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이 든 밤이었다.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래, 가져갈 짐을 싸야지. 그런데 도대체 뭘 어떻게 가져가야 하지?' 보건소에서 보내준 안내문에 따라 물품을 하나씩 정리했다. 버리고 나올 것을 위주로 준비하라고 했다. '이걸로 충분할까?' 경험자에게 도움받고자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누군가는 침구를 가져가야 한댔고, 또 다른 이는 김이나 참치 같은 밑반찬이 필요하다고 했다. 국물이 없어서 고생했노라는 후기 역시 여러 개 검색되었다. '그래, 평상시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빠른 회복이 될 거야.' 싫다는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소 사용하던 얇은 담요까지 챙기다 보니 짐이 제법 되었다.


"갈 때는 후송 차를 타고 갈 거고, 올 때는 싹 다 두고 나와야 하니까. 괜찮아."


집 앞 편의점을 갈 때도 옷을 갖춰 입고 나가곤 했던 남편은, 문 앞에 놓인 가방을 보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이내 집에서 입던 낡은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문을 나섰다. 양손에 피난민처럼 보따리를 하나씩 챙겨 들고 11층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도착 메시지와 함께 지급받은 비품 사진이 전달되어 왔다.

"모든 게 넉넉해. 이불이며 베개 모두 새것이야. 목록에 있는 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될 걸 그랬어. 음식도 집에서 먹을 때보다 아주 잘 나오는걸..."


철딱서니 없는 메시지를 받고 나니,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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