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남편의 미열과 경미한 근육통에서부터였다. 미열'감'을 느낄 때마다 체온을 쟀지만, 최고 36.9도였을 뿐 코로나를 염려해야 하는 37.5도에는 미치지 않았다. 이상 증세를 감지하여 검사받고 확진 판정을 받은
이틀간도 그 외 증상은 발현되지 않았다. 격리 시설로 이송되고 이틀 동안 잠을 못 자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었다. 예민한 이라서, 잠자리가 바뀐 탓이려니, 확진이라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려니 하며 두통을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사흘 때부터 열이 올랐다. 메시지에 답하기 어려울 만큼 기운 없어했고, 두통이 심해 잠들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하루 이틀간은 설사 증세를 보였고, 후각과 식욕을 동시에 잃었다.
(남편은 평소 급체를 해도 식욕이 떨어진 적이 없었던 터라 전반적인 컨디션이 안 좋아진 건 확실해 보였다.)
계속되는 수면 문제와 극심한 두통으로 병원에 이송된 건 닷새만의 일이다.
오십 대 초반, 평소 운동과 자기 관리를 잘해 온 사람에게는 드문 일이라고 했다.
소염제와 두통약을 처방 받았다고 했고, 정기적으로 폐 사진을 찍었다고도 말했다. 호전은 더디었다.
먹을 수 없는 날이 계속되어서 마시는 것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을 지정 택배 장소로 보내주었다.
며칠간은 마치 대상포진을 앓듯 아팠고 이후 서서히 통증이 줄었다고 했다.
통증이 감소되면서 식욕이 회복되었다. 퇴원 후에도 후각, 두통, 기운 없음, 수면 문제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커피 향을 맡기까지 보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심하게 앓던 남편은 퇴원해서 돌아오니 5kg이 빠져있었고, 집에서 지낸 지 사흘 만에 1.5kg이 증가했다.
그리고 발현 시점으로부터 20일이 경과되자 대부분의 기능이 회복되었다.
상대적으로 경미한 증상이었던 나는 미열 감과 인후통이 먼저 시작되었다. 검사 직전에도 심지어 음성 판정받은 날에도, 이런 증상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식욕을 잃었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감이 몰려들었다. 체온은 단 한 차례 37.5도가 나왔을 뿐, 한결 같이 36.2도에서 36.5도를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약간의 두통이 시작되면서 설사 증상 역시 며칠간 지속되었다.
억지로라도 기운 내기 위해 자가격리 동안은 끼니마다 물을 많이 넣은 누룽지로 식사를 했다. 입맛은 돋우고 미각을 확인해보려고 페페론치노 홀을 조금 부숴 먹어보기도 했지만 별다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음식은 상상만으로도 헛구역질을 일으켰고, 귤과 보리차, 탄산수를 수시로 먹으려고 노력했다.
반신욕이 도움되는지는 근거가 불충분하지만 지친 정서에는 충분히 도움되었던 것 같다.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시설로 이송되고부터 기침이 유의미하게 심해졌고 간헐적인 두통도 있었다.
담당 의료진과 상의한 끝에 감기약을 처방받아먹었는데, 2번 복용한 이후부터 기침이 현저하게 줄었다.
여전히 격리 시설에 머물고 있지만, 지금 내 건강 상태는 제법 회복 단계에 이른 듯싶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나 역시 20일 정도 증상을 겪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의 경험이 코로나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 보편적인 증상은 아닐 수도 있다.
체질이나 면역력, 기저 질환 유무, 건강 상태에 따라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증상이 발현되고 소거되는 순서에도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다만, 미열감, 기침, 콧물, 식욕부진, 설사,
무기력증, 후각 상실, 인후통, 두통 등은 의심해볼 근거는 되는 것 같다.
나와 남편이 코로나 중심에 서있을 때, 매달릴 수 있는 건 정보 검색뿐이었다.
불안은 모름에서 더 커지는 법이니까, 알고 나면 두려움이 감소될 수 있으니까 그랬다.
먼저 앓기 시작한 남편에게, "며칠 지나면 설사를 할 수도 있대", "음식이 안 먹힐 거라서 밥 대신 죽으로
바꿔 달라고 말하는 게 도움된대", "아파서 못 참겠다고 느낄 때가 되면 거의 끝나가는 거래",
"후각이 맨 마지막으로 돌아온대" 같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처음 '코로나 관통기'를 쓰기 시작한 건, 혼자 감당하기엔 두려워서였다.
생각은 뒤엉켰고, 도무지 정리되지 않았다.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모든 게 낯설고 막막했다.
쓰다 보면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었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상당히 호전된 지금도 여전히 쓰는 이유는 어디선가 불안해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서이다.
내가 겪은, 겪고 있는 이 경험을 피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이고 축복이겠지만,
행여 피할 수 없었다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힘겨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회복될 거니까,
꼭 그럴 거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