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by 묻는 사람 K

이 주일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자가격리'를 집에서 보내는 휴식으로만 생각했던 때였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봐도 "슬기로운 격리 생활"을 알뜰살뜰 잘하는 이야기만 눈에 띄었다. 나 역시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이틀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자려고 마음먹었다. 그런 다음, 사놓고 펼쳐보지 못한 책들을 읽고, 영화와

미드를 밤새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집 안 청소를 하고, 냉장고를 뒤져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 먹을 거다. 이 얼마나 달콤한 상상인가.


하지만, 느닷없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멍하게 있다 보면,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야 했고, 자가 격리자 앱에 내 상태를 수시로 보고해야 했으며, 시간마다 체온을 재고,

격리 시설에 들어간 남편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것으로도 벅찼다.


남편이 양성 판정을 받고, 시설에 가져갈 짐을 챙기고, 이송 이후 집안 소독을 하고, 내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다 보니 자가 격리 3일 차가 지나고 있었다. 결과를 받았을 때는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과 가족에게 결과를 전하고 직장에도 알리고 나니 금방 밤이 되었다.


새벽 4시, 방 쪽 창문과 베란다 쪽 통창을 열고 환기를 시작했다. 복도식 아파트라고는 해도 문을 여는 게

조심스러웠는데 통행이 없는 시간이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3월의 바람은 차가웠다.

맞바람을 타고 거실 탁자 위에 올려둔 종이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침대로 들어갔다. 잠은 오지 않을 테지만, 일어나서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었으므로

오늘은 온종일 침대를 벗어나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시간이 갈수록 눈은 초롱초롱해졌고, 머릿속은 맑아졌다. 잠을 이루지 못한 지 삼일째 되는 날이었다.


'가족 간 감염, 밀접 접촉자의 감염 사례, 잠복기'.... 여러 낱말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다시 검색창을 두드렸다. 밀접 접촉자의 감염 사례를 묻는 누군가의 질문에 댓글이 달렸다.

"99%라니까요. 거의 백프로라고 보시면 돼요."휴대폰을 닫았다.

그래, 이 좁은 집에서 내가 피할 도리는 없었을 거야.


남편이 경미한 증상을 보일 즈음에도 우리는 함께 식사했고, 양성 판정을 받은 날 아침을 함께 먹었지.

진단 이후에야 마스크를 쓰고 남편은 tv 방에서 나는 안방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지냈지만, 화장실도

하나뿐인 이 곳에서 바이러스를 피할 길은 도무지 없어 보였다.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증상이 발현되어서 빨리 앓고 말자. 그래, 될 대로 돼라.

격리 기간 동안 먹으려고 소분해둔 음식을 전부 냉동실로 옮겼다. 이제 내가 가지고 갈 물건을 챙겨야 한다. 뭐가 있을까. 다용도실에 올려둔 여행용 가방에는 하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목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미세한 기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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