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딸기, 귤, 달고 짠 과자들, 초콜릿, 치즈가 들어간 소시지를 가득 담은 봉투를 문 앞에 두고 가면서
큰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베란다 창문을 내려다보니 비상등을 끈 차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형부가 함께 왔던 모양이다. 언니가 혼자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서 마음이 놓였다.
뭐라도 먹어야 한다고 말했던 건 언니였다. 입맛 돋우는 음식이 생각나면 만들어 주겠다고 한 사람도
언니였다. 음성 판정 이후, 가족 사이에서는 공식적으로 편안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거로 되어 있는 나였다. 굳이 부모님께 잠복기다 뭐다 해서 걱정을 끼쳐드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주변의 걱정과 염려를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어떤 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니, 어머나... 어쩌니?....'같은 말에 답을 고르는 것조차 피곤하게 느껴졌다.
방법이 없다는 건 말하는 쪽도 듣는 나도 다 알고 있음으로 어떤 전화도 반갑지 않았다.
늦은 밤, 언니에게 귤이 달고 맛있어서 입맛이 돌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는 뭐든 먹어야 한다고 했고, 매콤한 주꾸미 잘하는 집을 알아뒀다고도 귀띔해주었다.
갱년기라 잠이 없어서, 늦은 밤이라도 바람 쐴 겸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정말 무서운 게 뭔 줄 알아? 제부처럼 철저한 사람도 피할 수 없었다는 거야."
온종일 침대를 뒹굴면서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왜지? 왜 그인 거지?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부부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생활했었다. 1년 넘게 사적 모임을 하지 않았고, 사람 많은 곳과 시간을 피했다.
올해 설에는 시댁이 있는 진주에도 가지 않았고, 자주 다니던 카페조차 뚝 끊었다. 집 밖에서 유흥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고, 여행을 다녀온 적도 없었던 우리였다. 그런데 왜? 어떻게?
생각할수록 감염 경로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결국, 이렇게 해도 피할 수 없었다는 건가?
몸이 천근처럼 느껴졌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고, 엄마는 종종 말씀하셨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새해부터 시작하려고 사둔 새 요가 복을 갈아입고 다시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
목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조금 더 심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