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집에서 기다려 줘!

by 묻는 사람 K

누룽지를 먹었다. 점심과 저녁도 물을 더 많이 넣고 누룽지를 끓였다. 간식과 야식으로도 같은 걸 먹었다.

입맛은 좀처럼 돌아올 줄 몰랐다. 그래도 뭐든 먹어야 할 것 같아서 만만한 메뉴를 골랐다.

속이 매슥거리는 것도 같았고 아닌 것도 같았다.


평소 좋아하는 라면은 상상만으로도 헛구역질이 났다. 냉동실에 얼려둔 빵을 꺼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계란을 꺼내려니 생각만으로 귀찮았다. 무기력증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옴지락거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입소하고 하루 이틀간은 수시로 메시지를 보내던 남편 연락이 뜸해졌다.

2인 1실이라, 폐쇄된 공간이라 전화 통화는커녕 메시지도 조심스럽게 주고받아야 했지만, 무엇을 먹었는지, 창밖 풍경은 어떤지 간식으로는 무엇이 나왔는지 수시로 소식을 전하던 그였다.


격리시설로 들어가고 사흘째 되는 날부터 남편 건강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두통으로 잠을 못 잔 지 5일째 되는 터라 그렇지 않아도 염려되던 차였다. 유지해 오던 체온도 37.5도까지 상승했고, 근육통도 심해서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다.




"자기야, 여긴 격리하는 곳이지 치료 시설이 아니야, 집에서 약 먹고 몸을 추슬러. 상비약을 먹어!

약 떨어지면 언니에게 부탁해. 어떻게든 몸을 낫게 해. 그리고 집에서 기다려 줘"




남편은 좋아하지만, 화초 뜯어 먹는 기분이 들어서 먹지 않았던 브로콜리 데친 것을 접시에 담았다. 먹느니 안 먹느니 티격태격 다투던 파프리카 조각도 함께 담았다. '그는 계획이 있었구나.'

평소라면 한 달 동안 나눠 먹었을 양의 야채를 접시에 가득 담았다.


밀접 접촉자의 감염력이 99%라던 댓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그 확률을 낮춰주겠어! 상비약 서랍에서 필요한 약과 각종 비타민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지금부터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방과 거실에 깔아 둔 러그를 세탁했다. 침구를 빨았고, 남편과 내가 자주 사용하던 소모품을

의료 폐기물 전용 용기에 넣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오늘부터 집안을 소독하고 정리하는 것, 내가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가는 것에만 신경 쓰겠다고 결심했다.

그래, 집에서 기다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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