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때

by 묻는 사람 K

주변을 맴돌다 결국 코로나바이러스 중심으로 진입할 때까지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매 순간이 좋고 나쁨만으로 단순히 구별되지 않는 낯선 사건과 상황의 연속이었다. 소소한 일에는 '파닥파닥' 동요하지만, 되레 큰일에는 대범한 편(이라고 믿었던)인 나는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다양한 감정이 밀려오고 쓸려 갔지만,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외부와 차단한 채 나름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감정에도 점차 무뎌졌는데 아마도 마음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이성'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을 걸어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눈물 많은 나는 신기할 만큼 울지 않았다. 남편의 양성 판정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송 차량에 오르는 꾸부정한 뒷모습을 내려다볼 때도, 증세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이송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불안하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낙관했다.


큰언니가 음식을 문 앞에 두고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도, 독서모임 주희씨가 각종 국거리와 반찬을 택배로 보냈을 때도, 가족의 염려 섞인 전화를 받을 때도 고맙고 미안했지만, 마음의 동요는 없었다.

'그래, 이 시기 지나면 갚을 날 있을 거야', 그렇게만 생각했다.


남은 격리 기간 날짜를 계산해서 보리차와, 탄산수, 누룽지를 적당한 양으로 나누는 일에만 몰두했다.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이것들이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상비약과 비타민, 짜 먹는 홍삼도 먹을 때마다 남은 개수를 헤아렸다.



헌데,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발생했다.

너무도 당연해서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필요한 품목에조차 들어있지 않았던

커피콩이 바닥나 버린 거다.

언제든 찾으면 손에 닿았으므로, 의식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아도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터무니없는 확신이었다.


마지막 한 알까지 톡톡 털어 커피를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커피양이 모자라 묽은 것에 뜨거운 물을

더 붓고 양을 늘렸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그렇게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순식간에 화가 치솟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생생하고 선명한 분노였다.

'아니 왜, 도대체 왜'

'주말마다 여행 다닌 사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를 가졌던 이도, 다 괜찮았는데 왜 우리 인 거지?'

노래방, PC방, 극장, 교회, 유흥주점, 실내 체육 시설, 5인 이상의 모임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데,

왜! 왜! 왜!......




오랫동안 집을 비우면 화분 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쌓인 재활용품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서둘러 불안해했고,

방법을 찾는다며 엉뚱한 시간을 보냈다.

정작 내가 가장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심했던 거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당연한 건 늘 당연해야 하니까 그럴 줄만 알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게 어디 이 뿐이었을까,

한바탕 화내고, 욕을 퍼부었더니 허기가 느껴졌다.

나는 큰일에 대범한 편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일 앞에서는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걸 여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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