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묻는 사람 K Dec 31. 2021

쉽게 살아온 삶을 반성하며

신뢰 인프라 교란 사범

 신. 뢰.  인. 프. 라.  교. 란.  사. 범! 익숙한 낱말의 생소한 조합이 이해되지 않아 빈 종이에 한 글자씩 눌러쓰고 따라 읽어 보았다. 그러니까,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 infra를 +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하는 +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건가???


 2007년 언론 매체에서는 연일 기사를 쏟아냈고, 낯익은 연예인이  줄줄이 거명되었다. 누군가는 사과했고, 어떤 이는 학위를 반납했다. 미술계에서 제법 영향력을 끼쳤던 젊은 큐레이터는 관련 혐의와 함께 당시 고위 공직자와의 염문설까지 더해져 큰 파장을 불러왔고 실형을 선고받았다.


 석사 과정을 마친 지 2년 지난 시기였던 만큼 논문과 표절 문제에 민감했고 공정과 정의에 열을 올렸으며 자부심과 무능감이 수시로 교차했다. 하지만 유관 업종에서 일한 지  만 5년을 넘긴 상태였고 업무에 필요한 자격증을 서너 개쯤 취득한 이후였으므로 내심 원한다면 못 할 게 없을 거로 기대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두세 시간 걸려 한 과목 - 운이 좋으면 두 과목-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이 일상이 되야 근거 없는 자신감과 오만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동거리보다 짧은 강의 시간과 왕복 차비를 제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월급이었다. 그 마저도 유지하려면 매 학기 증빙해야 하는 서류 만만치 않았다.


 14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 번거로움과 수고가 보상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생이 어디 그런가. 직책과 이동거리만 달라졌을 뿐 학기마다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은 변하지 않았다. 재직 증명서, 경력 증명서, 최종 학력 증명서, 임용 지원서 등등 10가지 서류를 모아, 이것이 사실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야 한다.   


 "시간 강사는 이력서나 그런 걸 보고 뽑는 게 아니라고, 지인을 통해 소개로도 하고 그런 거라고". "이력을 부풀린 건 잘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고,  허위 경력 논란에 관해서는 단순한 표기 실수"라고 해명하는 영상과 그 부부 입장을 앞장서서 대변하는 기사를 읽으니, 십여 년 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풍경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이 쉽게 살아오지 않았노라고 했다. 문제가 된 허술한 번역서는 안 보면 그만이라고도 했다. 지난 일 어쩔 수 없으며, 자신은 (여론에 의해) 악마화 되어 있고, 이 모든 논란에 대해 남편에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고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남편을 향해 고개 숙였다.


 그의 박사 논문을 칭송하던 지도 교수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성취의 발판이 되어준 석사 논문마저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이 뿐만 아니라 방문 프로그램이 해외 연수로 포장되었다고도 밝혀졌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그동안 너무 쉽게 살았구나! 나는. 


 돋보이고자 하는 욕구와 사소한 실수, 표기 오류, 적당한 인맥 활용. 이토록 다양한 방법이 있었음에도 나는 너무 쉬운 길만 고집했던 거다. 내 게으름을 반성한다. 그러므로 이제, 남편이 노력할 일만 남았다. 더도 덜도 말고 딱 9년만 공부해서 내 꿈을 이뤄주시길. 22년을 몇 시간 앞두고 간절하게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기억의 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